나의 해외 여행기/히말라야 트래킹기

히말라야 트레킹기 : 제 4 편 랑탕 과 체르고리 봉

반달이네 집 2008. 11. 2. 10:16

 

 

 제 4 편 : 랑탕 과 체르고리 봉 트레킹

 

 

 

랑탕 트레킹 1일차 

 

                                                                              1.17. 월요일

 

      오늘부터 2 단계 산행인 랑탕 산행이 시작 된다.   박대장의 설명으로는 지난 1년간 한국인으로는 2 번째 트레킹이 될 것이라고 한다.  월간지 '산'에서 충청지역 교사들을 인솔해서 트랙킹한 것이 첫 번째 것이라고 한다 . 

7시에 버스를 타고 티베트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샤부르벤지’. 10시간의 버스 이동이다.   시내를 벗어나 8시경에는 산속에 들었는데 안개가 자욱하다. 길은 1차선 폭 밖에 되지 않아서, 두 차가 교차할 수 없을 지경인데, 마침 오늘 번다 중이라 길에 차가 없어서 진행은 아주 빨랐다.   비도 약간 내린다. 

 

      포터들은 안나 푸르나 산행시 고용했던 14명의 포터중 8 명이 다시 합류했다. 집사람의 포터였던 키 작은 프레디프가 이번에도 왔다.  역시 집사람의 포터,  내 포터는 ‘렉’. 새로온 친구인데 25살의 나이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그는 영리해 보이는 얼굴인데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버스가 다소 작아 카고백은 모두 버스 지붕의의 짐칸에 실었다.  우리는 카트만두 타멜지역에서 서북방향으로 카카니, 라니포라,를 거쳐 ‘바라트바자르’에서 20분 쯤 쉬었다. 바라트 바자르 인근은 비교적 평평한 분지로 넓은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10시경 인데, 아마 그 시간대에 학교 공부가 시작 되는 모양이다.

     바자르에서 여자 대원들이 과일 등을 구입했다.   다시 출발하여 잠시 후 트리슐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쉬었다.   차는 다시 출발하여 대협곡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옆에 앉은 가이드 만이 옆구리를 찌르며 저기가 몇년전 산사태로 주둔군 수십 명이 매몰된 곳이라며 벼랑 중턱의 한 장소를 가리켰다.  

 

우리가 지나쳐 온 아찔한 산길

 

        우리가 지나는 도로에서 아래의 랑탕강 바닥 까지는 수직 높이가 1,000m 는 될 정도로 아스라이히 깊다.   그런데도 띠엄띠엄 민가와 계단식 경작지 그리고 곳곳에 노란 꽃으로 주위를 물들이며 겨자들이 자라고 있다.

        산골마을에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어 우리도 멎어 잠시 그를 구경하며 쉬었다.   신랑신부가 단장을 하고 마을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다.   대원들이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축의금 500 루피도 전해 주고 떠났다. 

 

 

산골마을 결혼식 인파에 섞여

 

 

        차는 다시 협곡 위 산길을 달린다.   고산족 여인 2명이 세워달라고 손을 든다.   운전수는 못 본척 그냥 차를 몰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협곡의 8부 능선위의 돌투성이 비포장도로이다.   도로의 넓이나 거칠기가 도저히 차가 다닐 것 같지 않은데. 우리 기사는 잘도 달린다.   가이드 만이 다시 옆구리를 툭 쳤다,. 그리고 손으로 허공을 가리킨다. 거기 좌전방에 또 설산이 허공에 떠있다. 이름은 거네스 히말이라고 했다.  행운의신 거네스. 

 

       차바귀가 돌틈에 빠져 차에서 내려 걸었다. 조수와 포터들이 차를 꺼집어 내느라 안간힘을 쓴다.  겨우 빠져나온 차를 다시 탄다.   차를 타니 다시 무섭다.   맨 왼쪽 버스문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나는 천길 낭떠러지를 지켜보며 이 고물버스의 엔진이, 브레이크가, 핸들조향 장치가, 이 털털거리고 씰룩거리는 도로에서 언제 손을 놓을지 걱정스럽다. 

 

차 바퀴가 돌틈에 빠지다 .

 

       그래도 눈 아래는 여전히 계단식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겨자꽃이 피어 있다.  협곡의 맞은편 산줄기에도 아래 랑탕강에서부터 우리 도로높이보다 높게까지 계단식 밭이 개간되어 있어 마치 코끼리의 콧등 주름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간지대에 간간이 보이는 민가들이 어떻게 저 높이까지 가서 경작을 할 수 있을까 경이롭다.

 

 

       다시 산지 마을을 지난다.   세 명의 사내아이가 사나운 기세로 버스 뒷꽁무니를 따라 잡는다,   눈이 초롱거리고 용맹스러워 보이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아이들이다.   강아지 한 마리도 덩달아 차와 경주를 했다.

 

      둔체 마을 입구에 버스가 선다.   길옆 초소에서 등록을 하고 1인당 1,000 루피의 국립공원 입장료를 냈다.   이제 랑탕지구의 시작인가 보다.   둔체는 꽤 부유한 마을로 보였다. 건물도 반듯하고 상점도 물건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대원 중 한사람이, 이곳이 티베트국경 마을이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몽골인의 얼굴과 베란다가 있는 2층 건물구조를 지적했다.   둔체에는 또 한 한국인이 광천수 공장을 세워 카트만두에 제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저 산 높은 곳에 그럴듯한 창고형 공장이 하나 보였다. 

 

 

 

         둔체에서 샤브르벤지까지는 수직 약 600 m 높이의 경사를 뱀같이 휘도는 도로를 따라 내려온다.   운전수는 아주 능숙하게 그 위험한 구비구비를 잘 운전 했다.   이전에는 둔체까지 밖에 차가 들어오지 못했는데, 샤브로벤지 쪽에 금광이 발견되어 군당국과 은행이 합작으로 길을 뚫고 개발을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샤브로벤지 마을 입구 왼쪽 산에 깨끗한 터널입구가 보이고 정리된 담장도 보였다.  샤브로벤지에는 5시 정각에 도착했다.   ‘라사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다.         밤 8시가 넘었었는데 아이들이 창밖에서 까르르거리며 논다.   노는 모습과 떠드는 분위기가 우리 애들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랑탕 2일차

                                                                              

1.18. 화요일

 

      라사 호텔은 시설이 괜찮았다.   침실의 벽이 콘크리트라 방음 문제에 신경을 쓸 일이 없고, 밝은 형광등과 싱글베드가 3개 있는 우리방은, 한곳 침대의 매트리스를 치우고 카고백과 배낭들을 벌려 놓고 작업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에 대원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기위한 배려에서 8시에 출발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누릉지를 끓여 먹기로 하였기 때문에 식당에 내려갈 필요도 없이 느긋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비가 만만치 않게 온다. 다시 한시간을 늦추어 9시 출발하기로 했는데도 상황이 호전 되지 않았다.   결국 빗속에 출발을 단행한다.   결국 비는 하루 종일 우리를 괴롭혔다.   한시경 원래의 계획에 훨씬 못미치는 중도의 랑탕강변 밤부롯지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과 저녁 그리고 숙박을 해결했다. 

 

       라사 호텔을 출발해서 강변로 내려서면, 우체국등의 시설이 있는 마을 중심부를 지난다,   오른쪽으로 꺽어. 랑탕강변을 따라 나아 갔다.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앞에서 티베트 여인이 회초리를 들고 소들을 몰고 마주왔다.   가볍게 인사를 했는데 여인의 모습이 곱다.   티베트인들은 우리들과 너무 닮았다.   닮았다기 보다는 같아 구별할 수 없다. 

   이곳 여행 중 느낀 것은, 여기의 티베트족 여인들이 아주 잘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 시골에서 보는 아낙들보다 이목구비가 더 수려한 것 같아 보인다. 

 

 

        랑탕강을 옆에 끼고 오르내리며 걷는다.   비가 계속 오면서 물이 불어서일까 예의 그 회색빛 물이 큰 바위를 만나 휘돌고, 넘쳐 돌며, 때로는 바위사이를 휘집으며, 갈라지며 도도히 흐른다,   젖은 낙옆들이 발밑에 깔려 마치 비온 늦은 가을에의 지리산 계곡을 등반하는 것 같다.   다만 더 웅장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비 때문에 1시에 도착한 뱀부롯지에 머물기로 했다.   냇가라 물소리가 시원하다.   빗방울이 뜸할 때는 냇가에서 안개 피워 오르는 계곡 구비와 도도히 흐르는 냇물을 배경으로 시진을 찍었고, 장작 난로를 둘러 싸고 젖은 옷가지를 말리며 잡담들도 나누었다.  저녁에는 닭을 잡아 닭 도리탕을 하기로 했다.   산행중 계곡 맞은편 큰바위 갈라진 틈새로 석청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꿀물이 흐른 흔적이 있어 여러번 채취가 있었던 듯하다.

 

 

 

랑탕 3일차

                                                                            

 1.19. 수요일

 

      밤부 롯지 에서의 숙박은 불편했다.   침실 사이의 벽이 얼기설기 막은 판자여서 침낭 쟈크 올리는 소리에도 신경이 쓰였다.   또 전기 시설이 없어 물건을 카고백이나 배낭에서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제 못간 거리를 보충하기 위해 출발을 서둘러서 어둠속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짐을 꾸리기에 애를 먹었다.   게다가 아침 식사도 거의 우리 여자 대원들이 수고를 해야 했다.

 

롯지 방에 불청객으로 뛰어든 염소 새끼.  막무가네로 나가려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

 

 

       밤 동안에 대원 중에 변화가 있었다.   L 씨가 중도 포기 하겠다고 선언했다.   속도 등산이 주특기라는 L 씨는 ‘비스따리 삐스따리’ 를 좌우명으로 하는 고산 장거리 트레킹에 적응 하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7시 20분에 롯지를 출발했다.   하늘은 맑았다,   어제 내린 눈으로 조금 오르면서부터 설경이 펼쳐졌다.   비온 후의 냉기가 몸을 떨게 했다.   랑탕 강변을 따라 서서이 고도를 높인다.   날씨는 차지만, 추적이는 찬비 후에도 나뭇잎들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다.   잎이 비교적 두텁고 윤기가 있는 것이 기온의 급격한 변화에 내성을 주는 모양이다.   마치 늦가을 한국의 깊은 산을 걷는 착각을 들게 한다. 

      희뿌연 랑탕 강물은 곳곳이 여울이 되어 바위를 부딪치며 시원한 소리를 낸다.   희뿌연 것은 석회질 함유량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차라리 빙하 녹은 물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곳곳에 산사태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랑탕콜라 뷰‘ 롯지에서 잠시 쉬고 다시 걷는다.   도중에 몰려 내려오는 소떼를을 만났다.   3 명의 목동들이 각기 그들의 소 (정확하게는 버펄로)를 몰고 내려온다.  크기는 우리 중소 보다 적은 송아지 티를 갓 벗어난 크기 밖에 되지 않는데 온순하다.   우루루 몰려오며, 오솔길 옆에 무방비로 비켜선 우리를 조심스럽게 피해 내려간다.

 

만에게 . 방목된 소들은 주인이 어떻게 다시 거두느냐고 물었다.   방목하는 곳에 가면 소가 주인을 찾아온다고 답했다.   믿을만한 답변이 아닌 것 같았다.   휘파람 소리라던가 피리소리라던가 로 불러 모은다면 모를까. 

 

잠시 쉬며 뒤돌아보니 ‘거네스 히말이 허공에 떠있다.  10시 조금 지나 어제의 원래 목적지로 했던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포터들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해서 우리도 라면을 끓이고, 아침밥 남은 것으로 급하게 만든 주먹밥으로 요기를 하는데 티베트인 주인이 김치를 내온다.  그 맛이 한국의 김치맛 그대로라 여기에서 담궜다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한국인 트레커에게서 배웠노라고 키가 작달막하고 착하게 생긴 호텔주인이 말했다. 

 

수력으로 마니차를 돌리는 기계장치가 있는 스투파

 

                      

      11시 반쯤 다시 출발했다.  길에서 티벳 불교탑 같은 것을 만났는데 놀랍게도 안에 수력으로 마니차를 돌리는 기계장치가 있어, 큰 호박덩어리 만한 마니차가 흐르는 물의 힘으로 힘차게 돈다.   마니차는 원래 작은 둥근통 표면에 불경의 주요 경귀를 써놓고 손으로 갓난아이 장난감처럼 빙글글 돌리면 불경을 독경하는 것 같은 법력이 있다고 믿는 티베트 불교의 종교의례 용품이다.   이 것을 수력으로 밤낮 돌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일견 장난스럽게 보이면서도 이들의 불교에 대한 신심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중도에 ‘굼나쵸크’의 롯지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집사람이 사진을 찍어 달라며, 한 현지 여인과 포즈를 취한다.   중키에 산지 정통 복장을 한 여인의 생긋 웃는 모습이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 10대 후반 또는 2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여인은, 돌아오는 길에도 만났는데, 라마호텔에서 일하는 젊은이와 오누이 간이라고 한다. 그 때는 라마 호텔의 부엌에서 우리 포터들과 아궁이에 장작을 지피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 처녀의 아름답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굼나초크에서 티베트 여인과 집사람

 

 

 

      2시 10분 쯤 고라타벨라(3,020m) 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했다.  계곡의 폭이 넓어졌다. 어제의 눈에 덮인 수목과 안개 피어오르는 골짜기를 배경으로 야크와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고라타 벨라는 이곳 말로 목장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진한 밤색말이 너무 아름다워 시진을 찍었다.  

 

 

 

 

 

      고등학교 졸업반 인 ‘프라카스’가 야크에 대해 설명해 준다.   야크는 소울리 라는 소과 동물의 암놈과 수놈소의 잡종 교배라고 하는데, 야크끼리 교배로도 송아지 야크가 태어난다고 한다.   야크 새끼가 태어나면 주인이 동네사람들을 초청해 잔치를 한다고 한다. 일반소나 버펄로 새끼가 태어나도 잔치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는단다.   야크는 3,000 미터 이상의 지형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며 고기는 질기지만 털이 비싼 값에 팔린단다.

 

풀을 뜯는 블랙 야크

 

       앞 방향으로 ‘랑탕히말’ 정상이 잠시 보이다 사라지고 전방 산봉우리 중턱에 검은 작은 조각구름이 걸려 있고, 우리 뒤의 흰구름이 모두 그 검은 조각구름을 향해 몰려간다,     '안나 푸르나’에서의 상황이 생각나서, 오늘 저녁도 큰 눈이 오려나 보다며 걱정을 했더니 가이드 만이 저녁에 지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3시 반경, 탕샵 마을에 있는 홀리 스피릿 롯지에서 여장을 풀었다. 원두막 방갈로처럼 생긴, 사방이 유리창으로 전망이 트인 식당에서 대원들 모두, 장작 난로를 둘러싸고 몸을 녹이다 7 시 넘어 겨우 수제비를 얻어먹고 침실에 들었다.

 

 

   

랑탕 4일차

                                                                            

 

  1.20. 목요일 

 

       3,200m 높이라 다시 고소적응에 들어갔다.   어제부터 많은 물을 마셔 밤에 야뇨증 환자처럼 들락거렸다.   등불도 없고, 방안의 온기도 없어 침낭과 체온에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피를 보러 들락 거리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방뇨는 궂이 화장실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하늘에는 반달이 떠있다.   상현달의 모습이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   세워져 있는 모양이 아니라, 누워 있는 반달이다.   위도를 감안하여 이유를 어림해 보지만, 학교 때도 물리과목 만은 괴롭웠던 나는 바른 답을 찾지 못 한다. 

 

하늘은 청명하고 별이 초롱거린다. 하얀 구름이 몇 조각 산봉우리 실루엣을 배경으로 허공에 떠있다. 산의 실루엣은 2중이다. 수목지대와 온기로 눈이 녹은 산의 그것이 검게 앞에 서있고, 달빛에 흰눈을 반사하며 설봉을 이고 있는 높은 봉우리가 그 뒤에 하얗게 겹쳐있다.   이 모습이 사진으로 나올 수 있다면 담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다.

 

      아침 8 시에 탕삽 마을을 출발했다.   강변을 따라 걷던 산행을 벗어나 능선위로 오른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완만하다.   랑탕강을 오른쪽으로 두고 걷는다.   9 시쯤 굼바 마을 롯지에서 쉬며 차를 마셨다.   굼바 마을 롯지는 규모가 작은 것인데, 30대 중반의 여주인이 착하고 순박하게 생겼다.   백두산님이 주인 여자가 아이 젖먹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고 싱글거리신다.    우리 남자들은 왜 젖먹이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워할까 !  

 

 

      우리는 굼바 마을을 지나 ‘랑탕마을’로 나아갔다.   굼바와 랑탕 사이에는 길이가 100 미터는 족히 되는 쇠줄로 만든 출렁 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랑탕 마을은 한 30 가구 정도의 비교적 깨끗하고 큰 마을이다.   협곡의 폭이 넓어지며, 산속에 제법 넓은 경작지가 펼쳐있다.   경계를 돌담으로 쌓아 주로 야크 염소 양들을 방목한다.   닭이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닭이 이 고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인가.  

 

마을입구에 3개의 마니차를 돌리는 수력 마니차 시설의 탑이 있다.   풍부한 흐르는 물로 수차를 돌려 마니차를 쉬지 않고 돌리고 있다.   차라리 발전시설을 설치하면 몇 가구의 전기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속물적인 생각이 들었다.  

 

     주위 변화에 둔감한 나에게 또하나 범상치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집의 담이나 경작지 경계표시와는 다르게, 길을 따라, 두께 6~ 70 센티, 높이 1.2 ~ 1.5 미터 크기의 돌 건축물이 길게 담과는 별개로 벽을 이루며 쌓여져 있다.   밑에는 판석을 뉘여 놓고 그 위에 경판이 새겨진 판석을 세운 후 다시 판석을 뉘우는 식으로 2 층 또는 3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고, 끝으로 지붕 마감을 했다.   얼른 보기에는 우리 시골 고택의 흙담장을 연상시킨다. 가끔 탑식으로 된 것도 있다.  

 

 

담장 같이 쌓인 마니스톤. 대장경 같이 경전이 쓰여진  판석이 쌓여 있는 것이다 ..

 

 

 

 

 

 

      처음에는 무심코 보았다가 세워진 판석에 네팔어로 글씨와 그림이 파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티벳 사원이나 수력 마니차에서 보던 그 글씨와 불교 그림이다.   때로는 100 미터 이상의 길이로 랑탕마을에서 걍진 콤파에 이르는 길옆에 비연속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후에 가이드 만과, 방 선생에게 그 돌담이 마니스톤이라고 불린다는 설명을 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팔만대장경을 연상해 보았는데 판의 글씨가 크고, 인쇄가 가능하지 않으며, 마니차의 경우 제한된 경전이나 경귀를 회전시켜, 글이나 학문적 기반이 약한 서민들의 신앙생활의 방편으로 활용케 하는 점을 종합해 보면, 대단위 경전의 보관 방식이아니라 수행자의 순례수행을 돕는 주요 경귀나 주문의 반복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해 보았다.   랑탕 지역은 티벳 불교의 성역으로 치부된다고 한다.   이 불교 구축물이 이 작은 랑탕 마을의 주민만을 위해 그들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닐 것이다.  인근 광역 지역의 성소로서 랑탕 지역이 선택되어 그 구축물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랑탕마을’ 중심부를 지나쳐, 다음 마을 ‘문두’에 있는 작은 롯지에서 식사를 한다.   랑탕 마을에서 점심 식사 장소를 고르다 지나쳐 부득이 택한 장소이다.   별도의 식당 거실이 없는 작은 여인숙 같은 곳인데 여기에서 식사를 해결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12시 경에 다시 출발하여 3시 반 경 오늘의 목적지인 ‘걍진 콤파(3,730m)’ 에 닿는다, 콤파는 수도승이 수행을 하는 수도원을 말한다.   마을 입구 왼쪽 작은 언덕위에 마을이름을 붙일 정도 같지는 않은 허름한 건물이 티베트 불경들을 쓴 깃발에 휘감겨 있다.

 

     걍진 마을은 정갈한 주택과 호텔건물이 들어선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입구 왼편으로 ‘랑탕리룽 히말’ 이 구름에 모습을 거의 감춘 채 버티고 솟아있고, 그 오른쪽으로 폭 넓은 빙하의 흐름 자국이 있고, 저 멀리 규모 큰 빙폭이 보인다.   그곳이 ‘리룽 그래시어’ 라고 내팔 최대의 빙하라고 ‘가이드 만’ 이 설명해 주었다.

 

걍진 콤파 마을 전경

 

       우리가 정한 숙소는 ‘야크 호텔’ 로 내 방은 3층인데 정갈하고 전망이 좋았다 (설산으로 둘러 쌓여 빼어난 전망). 내일은 7시에 출발하여 4,950 m 급의 ‘체르고 리’ 봉을 등반할 예정이라고 한다, 등반시간만 4시간 정도를 잡고 있었다,

 

 

 

랑탕 5일차

                                                                             

 

 1. 21. 금요일

 

       3,900m 고지에서의 숙박은 만만치 않았다.  침실은 온기와 전기가 없고 물도 저녁에 준비한 따또빠니 (끓인 물) 밖에 없는데 고소 적응을 위해 다 마셔 버렸다.   밤중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그리고, 내일 거의 5,000m 에 육박하는 하말라야의 한 독립된 봉우리를 등정한다는 흥분감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아침은 방선생과 여자 대원들의 배려로 미역국으로 먹을 수 있었다.  입맛이 돌아 기분이 좋아졌다.  날씨도 많이 푸근해졌다.  7시 조금 지나 호텔 마당에서 작은 등산전 행사를 하고 출발했다.  먼저 걍진 콤파 마을의 북쪽에 있는 ‘걍진 리’ 봉을 오르고, 여건이 좋아지면 그 뒤에 있는 채르고리를 오른다는 계획이다.   오는 도중에 만난 몇 명의 외국 트레커들은 악천후로 ‘체르고 리’ 봉을 오르지 못했다고 했었다.  

      ‘체르고리’ 봉까지 등산시간은 4시간 하산시간은 1시간 반을 계산하고 있었다.  호텔 주인이 2시간 반이면 오른다고 좀 늦게 출발해도 된다고 참견을 했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 대원중 P 사장이 체르고리 봉 등정을 포기하고 호텔에 남는다.   신장 190 센티, 체중 90 여 키로의 거구이신 P 사장은, 60세의 고령에도 잘 견뎌내였는데 아쉽게도 하이라이트를 포기한다.

 

 

       산중은 해가 늦게 뜬다.   어슴프레한 주위를 더듬으며 초반부터 급경사를 치솟는다. 몇걸음 옮기고는 숨이 턱에 닿았다.   그래도 여명속에 지그재그로 오르는 대원의 모습과 동녘이 밝아오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 사진을 찍으며 앞서며 뒤서면 올랐다.   포터 중 젊고 힘 좋은 2 명이 앞에서 러셀을 한다.   힘들이 좋다. 걷기도 힘든데 ...

       2 시간 조금 못 미쳐 ‘걍진 리’ 봉 정상에 닿았다.   우리나라의 여느 산 같이 정상에 각진 돌들이 마치 모자를 쓴 듯 올라 앉아 있다.  그 위에 티베트인들의 돌무더기와 장대위의 깃발이 펄럭인다.   티베트인들은 돌무더기를 쌓아 놓기를 좋아한다, 마을마다, 산길마다, 우리의 서낭당, 몽고의 ‘오보’ 같은 그래서 동족감이 생기는 것일까. 

 

걍 진 리    정 상 에 서 집사람.

 

                                                  

                     

       대원들이 사진을 찍고 환호하며 쉬었다.   북동쪽으로 다음 목적지인 ‘체르고 리’가 능선을 따라 부드러운 산봉우리를 보여주며 부른다.   완만한 경사가 한 10분이면 뛰어 오를 것 같이 만만해 보인다.   서쪽으로 ‘랑탕리룽 히말’ 산과 리룽 빙하가 역어낸 협곡이 마치 중장비로 파낸 듯이 반원통 형으로 파인 흔적을 보이며 장관을 이룬다.

 

       30 분 쯤 휴식 후 ‘체르고 리’ 등정을 시작했다. 1 시간 후인 10시 40 분 ‘체리고 리’ 정상에 닿았다. ‘  걍진 리’ 정상이 저 아래 발치에 깔려 보인다.   저기에서 환호하며 즐거워했던 것이 머슥하게 느껴졌다.   정상을 오르니 인근에는 저 빙하와 협곡 건너에서 차가운 위엄을 보이는 거대하고 가파른 설봉들 밖에는 더 오를 곳이 없다.   그곳은 암벽과 빙벽 등반 능력이 없이는 오를 수가 없겠다.   리룽 빙하 건너의 ‘랑탕 리룽 히말’ 산정과, 북으로 동으로 남으로 계곡 건너편에 둘러서 있는 칼같은 산봉우리들이 정상에 흰눈에 덮고 차고 강한 기운을 뿌리고 있다.

 

체르고리(4,985m)  정상에서 집사람

 

 

       리룽 빙하의 전 모습이 눈 아래 펼쳐진다.   북동쪽 산정으로부터 거대한 폭포수 같은 빙폭을 시발로 ‘ 체르고 리’ 봉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휘감아 남쪽으로 흐른다.   어제 걍진콤파 마을에 들어서며 보았던 빙폭은 그 작은 지류에 불과했다.   과연 네팔 제일의 빙하라는 표현이 실감이 간다.   빙하가 파헤치며 지나간 남쪽에 작은 산둔턱이 있고, 그 둔턱에 막혀 빙하는 서쪽으로 방향을 틀며 링탕강 쪽으로 자지러진다.   그 산둔턱 남향으로 걍진 곰파(수도원)가 있고, 걍진 마을은 그 남동쪽에 있다.   티베트 불교의 법력 때문일까.   자연의 조화는 범인에게는 불가해하다.   어떻게 그 광폭한 빙하가 한더미 작은 둔덕에 막혀 방향을 틀게 되었을까 ?

 

치르고리 봉 등정을 만끽하는 대원들, 훌쩍 큰 분이 백두산님

 

        한참을 머물다가 ‘체르고 리’ 봉의 동쪽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등정을 완수했다는 안도감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 옅게 깔린 눈을 밟으며 경쾌한 걸음으로 내려왔다.   올라 갈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하산길의  휴식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1시 40 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랑탕 마을’로 이동 했다. ‘랑탕 리룽 히말’ 의 한 봉우리에 흰구름 조각이 흩날리듯 걸려 있다.   마치 우리에게 손수건을 흔들어 주는 것 같다

 

 

< 함께 못 온 친구에게 : 랑탕에서 >

 

랑탕에 다녀왔오

체르고리 봉도 올랐지 

 

랑탕 이끼 먹고

랑탕 냇물로 입가심 했지 

백설 검산이 반짝이고

물안개 퍼지는 곳에

야크떼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곳 

롯지 여인 애잔한 눈빛같이

랑탕산은 구름자락 흔들며

함께 다시 오라며 눈물 짓더군.

 

 

귀&nbsp;&nbsp;&nbsp;&nbsp;&nbsp;&nbsp; &nbsp;로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언제나 많은 것들을 속삭여준다.   어제의 오름길에서 미치지 못했던 것들을 곰삭여 주며 정리해 준다.   남쪽과 북쪽의 검산들의 강한 산줄기들이 동서로 벋는 깊은 협곡을 형성하고, 그 바닥에 ‘랑탕 콜라’ 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북쪽 둔턱에 유역을 만들어서 곳곳에 방목장이 주 용도인 듯한 경지가 펼쳐진다.   넓은 곳의 폭이 1 키로를 넘는 곳도 있다.     모두 해방감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려오는데 방선생 ‘가이드 만’ 을 붙잡고 네팔어를 학습하며 내려온다,   방선생은 이제는 짧은 말은 네팔어로 완전한 문장으로 말을 하는 것 같다.

 

       4시에 ‘랑탕마을’의 작은 롯지에 숙소를 정했다.   순목재로 지은 아담한 롯지이다. 1층에는 방 하나에 작은 난로가 있는 거실, 2층에는 가운데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한평 반 남짓한 침실이 8 개 배치되어 있다.   주인은 20대 중반 정도의 여자이다,. 벽이 목재라 한방에서 코를 골면 2층 전체에서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짱짱해 보였는데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이라고 한다. 

 

롯지 내의 숙박 모습

 

 

 

   

랑탕 6일차

                                                                              1. 22. 토요일

 

       어제 저녁 7시에 잠이 들어 새벽 2시에 첫잠에서 깨었으니 푹 잔편이다.   어제는 신열이 있고 몸살이 날 것 같았는데 몸과 마음이 개운했다.   손을 넣어 뱃가죽을 잡아 본다. 누워서 가슴부터 쓸어 내려가니 갈비 끝에서 뚝 떨어진다.   배에는 뭉클뭉클한 배 근육이 잡힌다.   아! 많이 빠졌구나 !  

화장실을 간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있다. 벌써 5 센티 정도의 눈이 쌓여 있다. 밖에도 그렇고 안에도 포근하다. 눈이 오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 출발 준비를 했다.   눈이 10 센티 정도 쌓였다.   날씨가 포근해서 머리를 감는다.   뻣뻣했던 머리칼이 부드러워 지며 마음이 느긋해 진다.   아침 식사는 집사람과 누룽지를 끓여 먹었다.   하나 남은 볶은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입맛이 되살아 났다. 전체를 위한 아침으로 방선생이 만두를 준비해서 다시 또 먹었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 난로가에 둘러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포터들이 주방에서 노래를부른다.   집사람이 장난삼아 ‘프라카스’ 에게 이리와서 함께 놀라고 하니까, 가서 모두를 데리고 왔다.   그들이 피리를 불며 노래를 하고 그 기분이 서서이 우리들에게 전달되어 우리도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8시 반에 출발했다.  그 사이 안개가 자욱해 졌다.  10 센티 쌓인 눈을 밟으며 100 여보를 걸었을까. 여성대원의 환성을 질러 놀라 하늘을 바라본다.  위쪽 부분의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며, 주위의 눈덮인 검산들이 환영처럼 우리를 둘러싼다.   우리는 순간 가상세계에 옮겨진 어린아이들처럼 하늘을 보며 당황하며 안절부절 즐거워했다.

“ 오! 하느님 ! 정말 감사합니다 !”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 안에 새로 태어나신 성인이라도 한분 계신 겁니까. 어째 이런 아름다운 계시를 우리에게 보이시는 겁니까!!!!”

 

 

 

      이 현상은 2분정도 계속하다 사라졌다.   안개가 걷혀 상류 쪽으로 옮겨가며, 다시 눈 덮인 검산의 울안에 갇쳐 있는 우리를 발견했을 뿐이다.   다시 안개가 우리를 감싸안는다.   주위가 회색으로 변했다.   우리는 안개속에 어렴풋이 옆의 벼랑을 의식하며 작은 진달래꽃과의 관목과 눈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더듬어 내려간다.

 

 어느새 관목지대가 지나고 수림지대로 옮겨왔다.   눈 덮인 집, 계곡. 바위, 눈쌓인 바위틈을 헤집고 흐르는 맑은 물, 모두가 내면으로 파고들어 침묵하고 행복을 느끼게 했다. 

 다시 시야가 넓어지고, 눈쌓인 수풀사이로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졸졸거리는 개울을 건너뛰며 나간다.   여성 대원들이 환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름답다,   검산과 웅장한 바위와 ‘라리구라스 숲’, 물소리, 짙은 안개, 하늘의 한곳의 운무가 허물어 지고 드러나는 파란 하늘....

 

     이런 벽지 지역의 여자들의 정조관념은 어떨까 ?   집단 정착하는 우리들과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부와 단절된 소수 민족들은 때로 외부 여행자에게 자기 딸이나 부인을 동숙하게 만드는 우생학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이곳 랑탕 여인들은 자주 관광객들에게 관광객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불쾌 했지만 외부 산물이 귀한 이들은 외지인들로부터 그 것을 얻는 다른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문화 충돌의 현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랑탕 상행길에 만났던 모자.&nbsp; 아이에게 사탕을 주었더니 배낭을 유심히 뒤척이며&nbsp; 이것 저것을 요구해서 당황했다 .

 

 

       민가 옆 눈 덮인 마당에에 야크 한 마리가 움직임 없이 조각상처럼 서있다.   저편 숲옆 공터에도 야크들이 떼지어 미동도 않고 서있다.   민가를 지나는데 사내가 인사를 하며 담배를 요구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고라타벨라에 11시 반에 도착했다.  점심을 기다리는 동안 사방이 환하게 개이며, 하늘과 설산과 나무와 롯지 지붕에 쌓인 눈들이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다.   다시 우루르 몰려나가 사진을 찍는다.   이곳의 안개는 수시로 개였다 끼었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이곳의 풍경도 보는 시점마다 새롭다.   다시 짙은 안개가 끼고, 우리는 1시반 경 다시 하산 했다.   목표는 라마 호텔.  

 

      고지에서 내려 보는 랑탕강은 그제 오를 때 보다 더 수량이 많아지고 힘차게 흐르는 것 같다. 어젯밤의 방의 강설 때문일까,  아니면 산행의 무게를 벗어 버린 안도감에 주변에 대한 감수성이 항진된 탓일까.  우리는 질척이는 눈을 밟으며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렸다.

 

  수목들이 울창해지고 거목들이 하늘을 가린다.   아침 출발 때에는 키 작은 관목들을 밟았는데 벌써 두 아름 이상 굵기에 10길 이상 높이의 전나무들이 빽빽이 서있다.   가지에 쌓였던 눈을 후루룩 흘리며 서있는 나무의 줄기에는 안개와 눈녹은 물로 자라는 이끼가 덮고 있고, 나뭇가지에는 마치 바닷가 해초처럼 가지마다 길게 이끼자락이 나뭇잎보다 더 무성하게 늘어져 있다.   이끼색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옆의 여성대원에게 물어 보았다.   한분은 단풍든 이끼색이라고 하고 한분은 겨자색이 가미된 초록색이라고 했다.

 

 

 

        중도에 넘어진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드는 7~8 명의 사내들을 만났다.  1미터 직경의 긴통나무를 3 개의 큰톱으로 둘씩 맛잡고 켜고 있고, 한편에서는 한 사내가 도끼로 그 것을 뽀개고 있었다.   아! 그 많은 롯지의 땔나무들이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지는구나 싶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아이젠을 벗어 닦는다.   이제는 희끗한 잔설 사이로 마사가 덮인 오솔길이 아래로 뻗어 있다.   군나쵸크에서 잠시 쉬며 후미를 기다린다.   외국인 6명이 올라가고 있다.   체격이 산만한 이들은 포터도 없이 자기들끼리 오른다.   롯지 앞에 오를 때 보았던 그 처녀가 서 있어 반가웠다.   아마 롯지 주인의 아내이거나 하겠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3시 40분 우리는 라마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로 삼았다.   배정된 침실이 4 평은 되는 것 같다.   판자 처마에서는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안개가 자욱하여 을씨년스러운 냉기가 흘렀지만, 작은 탁자가 있고, 카고백을 정리하기 위해 침대의 매트리스를 젖혀 쓸 필요가 없었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등산일기를 쓰고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하고 거실의 난롯가에 앉아 젖은 옷을 말리며 저녁을 기다린다.   6시쯤 치즈와 김치가 듬뿍 담긴 볶은 밥과 야채 스프를 먹었다.

 

 7시 반쯤 포터들이 들어와 자리를 마련한다. 식탁을 벽쪽으로 밀어 붙이고 춤출 공간을 만든다,   부엌쪽에서 피리 음 잡는 소리가 난다.  포터들의 노래와 춤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처음에는 멍하고 있다가 이들이 등정 기념 파티를 원하는 것을 알아 차리고, 럭시를 사오고, 방선생은 포터 ‘파상’ 과 함께 전을 굽고 햄을 볶고 하여 안주를 마련 했다. 우리는 그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춤을 잘 추는 포터에게 2~3불씩 팁을 주다가 나중에는 함께 어울린 나머지 모두에게 1~2 불씩 나누어 주었다.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밖에는 안개가 짙다.   랑탕 강물소리, 처마와 처마 사이에 걸어 놓은 오색 깃발의 펄럭이는 소리 . 밤에 화장실에 다녀오는 밤의 풍경이 그랬다.

   

 

랑탕 7 일차

                                                                             1. 23.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5센티 이상 쌓여 있고 아직도 눈이 내렸다.   출발시간을 8시반으로 잡고 있는데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오고 있다.   일단 출발하면 멎겠지 하는 계산이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눈이 질척이며 내리다가 1시간쯤 지나자 비로 바뀌어 대원들을 당황하게 했다.   비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흠뻑 젖어, ‘밤부 롯지’에 10시 반에 도착 이른 점심을 주문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이 롯지는 오를 때에도 비 때문에 중도에 숙박하였던 곳이다.   이 지역은 상습 강우지역인 것 같다.   당시에도 거실의 난로가 굴뚝이 막혀 연기를 내며 괴롭히더니 오늘도 굴뚝은 여전히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며 대원을 괴롭힌다.   비난의 화살이 롯지 주인남자에게 향해졌다.   16살, 12살, 8살의 귀여운 세 딸아이와 아들하나를 데리고 있는 이 사내는 이런 서비스나 일에는 관심이 없는 듯 난로 굴뚝은 막혀 있고. 장작은 한상 젖어 있다.  게으른 녀석 !   딸아이들만 귀엽고 부지런해서 대원들의 사랑을 받았다. 

     1시에 ‘밤부 롯지’를 출발하여 ‘샤브르 벤지’ 쪽이 아닌 랑탕강 남쪽 산줄기를 타고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의 5부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비는 질척거리다가 고도가 높아지면서 빗줄기가 가늘어 지더니 개였다.   저 아래 랑탕강 계곡은 아직도 안개가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여전히 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다.   ‘밤부 롯지’ 주변은 마치 서유기 속의 수마왕 지배 지역 같이 항시 비가 휘도는 상습 우기지역인가 보다. 음습하고 불쾌한 곳이었다

.

     우리가 있는 곳도, 그런 천기의 변화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았다.   하늘이 맑을 때에는 저 멀리 서쪽으로 ‘거네스 히말’이 아름다운 모습을 뽑내고 있었지만, 수시로 구름이 몰려와 시계가 좁아지고는 했다.   때로는 안개 속에서 오른쪽으로 천길 낭떠러지를 의식하고 조심조심 발을 옮기기도 하고, 구름이 걷혀 먼 조망이 가능한 산굽이에서는 설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나아가 두 시간쯤 지나서 우리의 목적지인 ‘톨루샤부르’ 가 조망되는 산마루에 올랐다.   그리고는 또 다시 급강하 했다 다시 급히 올라 와서야 협곡 맞은 편에 ‘톨루 샤부르’가 마주 보이는 고지에 올랐다.   마치 ‘안나 푸르나’ 트랙킹 코스중 ‘시누와’에서 ‘촘롱 마을’을 보는 기분으로, 협곡 건너의 ‘툴로 샤브루’ 를 마주 대한다.

 

랑탕강 남쪽 산줄기에서 바라본 랑탕 계곡

 

                        

     ‘밤부 롯지’에서의 산오름에는 많은 대나무 자생 군락지역이 있다.   약 반치 정도 직경의 대나무는 곧게 벋어 오솔길 옆에 자생하고 있었는데 곳곳에 대나무를 세로로 쪼개어 놓은 작업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사람들이 가구나 건축에 이 대나무 껍질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등성이를 내려오는 길에서 가이드 ‘만’ 이 멧돼지 질주 흔적이과 땅과 나무 뿌리가 파인 흔적을 보여 준다.   중턱쯤에는 마치 중기로 파헤친 듯 넓게 돌과 뿌리를 뒤집어 놓은 곳도 있었다.   여기는 야생 동물 보호구역으로 큰소리를 내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만은 익살스럽게 호랑이 흉내를 내면서 곰과 호랑이도 있다고 덧붙였다.

 

얼마 후 이편 산중턱과 ‘툴로 샤부루’ 를 잇는 긴 출렁다리를 지난다.   다시 마을을 향해 급경사를 오르고 '톨루 샤브로마을(2,210m). 중심부를 통과 하여 마을 상부에 있는 ‘라마 호텔’ 에 투숙한다.   숙박한 롯지와 이름이 같다.   랑탕 라마 호텔에서 ‘툴로 샤브로’ 라마 호텔까지는 그 길고 진 빠지는 산행에도 불구하고 겨우 100 미터의 고도를 높였을 뿐이다.   호텔은 콘크리트 건물에 방마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되어 있는데 오늘은 햇볕이 없어서 전기도 샤워도 쓸 수가 없단다.

 

     티베트계 롯지 주인의 아내는 영악했다. 자기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며 콜라 등 음료와 다과 사기를 요구 했는데 대원들은 40세라는 그녀의 나이와 아버지 세르파와 어머니의 결혼이라는 설정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국어도 하나도 모르고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했다.

 

 

 

티베트인 마을: 주택은&nbsp;돌로 벽을 쌓은 2층 구조로, 1층은 창고로,&nbsp; 2층을 주택으로 사용

 

 

      이곳 마을 민가의 가옥 구조가 특이하다. 돌로 벽을 쌓은 2층 구조인데, 1층은 창고로 이용하고 2층을 주택으로 사용하는 구조이며, 길에서 2층 주택과는 사다리로 연결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