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조지아
2. 조 지 아
아제르 바이잔의 일정을 마치고 라고데키 국경을 넘어 조지아에 입국하여 현지 가이드 데비드와 조우했다. 70년대의 획기적 경제발전과 80년대의 민주화를 이룬 한국을 동경하여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했다는 그는 좋은 인상의 건장한 청년으로 한국어도 비교적 자유롭게 구사하는 친한적인 젊은이었다.
89년생인 그는 현재 한국 수자원 공사 조지아지사에 근무하는 부인 - 조지아인이다- 과도 한국에서 만났다고 한다.
조지아는 그리스 정교국가이며 자유 민주주의 국가, 면적 6만 평방키로, 인구 350 만명으로 수도 '트빌리시에 150 만명이 몰려 살고 있다고 한다. 북쪽은 러시아와 험한 코카서스 산맥을 경계로 접하고 있다. 조지아 는 그리스어로 농사 잘 되는 땅이라는 뜻. 조지아 영역으로 넘어 오면서 농가주택이나 주위 풍경들이 포근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장
국경에서 1시간 여를 들어와 농가에서 점심을 했다. 푸근한 인상의 노인장이 문밖까지 나와 환한 웃음을 띄며 영접을한다. 메뉴는 되지고기 바베큐인데 따르는 요리들이 풍성하다. 삶은 비트, 감자튀김. 빵 등등.
입맛에 맞아 모두 환호를 올리며 식사를 한다. 주인장, 기분이 짱한지 백포도주 병뚜껑을 아낌없이 딴다. 부인과 딸들로 보이는 두처녀도 성심것 거들고 있다. 넓은 정원에는 포도, 키위넝쿨이 우거지고 옆 포도원에는 수십통 의 벌통이 놓여 있다. .

포도주를 곁들인 풍성한 점심

농가의 안뜰
<시그나기>
식사를 마치고 1시간 가까이 달려 시그나기의 보드베 수녀원을 찾았다. 9세기에 건축하고, 17세기 리모델링한 수녀원으로 바실리카 양식과 비잔틴 양식의 두 건물을 갖고 있다. 4세기초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포도나무가지를 묶어 십자가를 만들어 기독교를 선교한, 조지아 교회의 대표, 성녀 니노가 묻힌 자리에 세운 교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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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 수도회 : 성녀 니노가 묻힌자리 위에 세운 교회라고 한다
시그나기는 800 미터 절벽위에 세워진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이었던 중세 도시이다. 인구 2천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지만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그 중 19~20세기 초 활동한 조지아의 유명화가 니카라 - 원명 니코 피로스 마니- 가 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현재 편당 500 만불에 거래 되고 있는 유명한 화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지고한 사랑이야기도 노래를 통하여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의 심수봉도 부른 ' 백만송이의 장미 - 원 노래는 라트비아의 곡에 러시아어로 러시아 가수가 부른 것으로 이 노래의 가사 내용 주인공이 나카라이다. 그가 한 프랑스 여배우를 사랑하여, 사랑을 호소하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밤마다 몰래 그녀의 집 주위에 백만송이 장미를 헌정하였다는 일화를 내용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그나기는 사랑의 도시란다. 24시간 운영하는 웨딩 홀이 있을 정도라고 ㅎㅎ


트빌리시의 아침 골목 풍경
차를 타고 시내 관광을 나섰다. 첫 목표는 트빌리시 시내를 굽어보는, 대주교 성당인 사메바- 성삼위의 뜻- 교회였지만 도중 길이 막혀 오늘은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사메바 성당은 내일 보는 것으로 마루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 방향
구시가지ㅡ 올드 트빌리시ㅡ는 각 종교의 집합장이라 한다. 조지아교회, 아르메니아교회. 이스람 사원 등이 혼재 하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찿은 곳은 시오니 성당 . 꿈속에서 성모 마리아로부터 '조지아에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 는 계시를 받은 성녀 니노(St.Nino) 가 제단 왼쪽의 포도나무 십자가를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 성당이다.
성당은 마침 미사중이었다. 정교회에서는 서서 미사를 본다. 성당내에는 악기도 없이 아카펠라로 진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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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 성당
성당 옆 한턱 높은 곳에 첨탑이 붙은 건물이 있는데 신학대학이었다고 한다. 스탈린이 수학 중 마르크스주의에 팀닉하여 퇴학 당한 그 대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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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다니던 성당부설 신학대학과 타마타(건배자)상
성당을 나서니, 공터 중앙에 타마타(건배자) 동상이 있다. 이곳에서 쿠라강변까지는 일테면 트빌리시의 이태원 거리라고 한다. 양옆으로 많은 까페들과 기념품상들을 볼 수 있었다.
쿠라 강을 건너 강변 돋음 언덕위의 메떼히 성당을 찿았다. 메떼히 성당은 요새지였었다고 한다.
성당 정면 절벽 가장자리 쿠라 강과 구시가지를 굽어보는 곳에 기마상이 있다.
5세기 이베리아 - 조지아 의 옛 왕국이름 - 왕으로 이곳에 매 사냥을 왔다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 성채를 세우고. 트빌리시를 건설하여 수도를 이전한 왕이다. 이 성당과 기마상은 구시가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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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떼히 성당 원경. 기마상이 보인다

메테히 성당에서 보면 쿠라강과 구시가지 건너 높은 산위에 아랍인들이 만든 요새인 나리칼라 요새와, 그 옆에 왼손엔 포도주잔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조지아 어머니' 동상이 있다. 데비드는 남편과 아들은 전쟁터에 보내고 혼자 있는 여인의 강한 태도로 외부인이 올 때의 환대는 하지만 허튼짓 하면 알지 하는 모습이라나. ㅎㅎ
시가지 중심은 흐르는 쿠라 강 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해주지만 물색이 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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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떼기 성당을 나와 케이블카를 타고 쿠라강과 올드 트리빌지를 넘어 나리칼라 요새로 이동하였다. 나라칼라 요새ㅡ 아랍어로 튼튼한 요새라는 뜻 ㅡ 8 세기 아랍인이 건설하였다.
어머니 상과 요새에서 자유시간을 가진 후 걸어 내려와 동굴도시로 향했다. 한시간 정도 주행 후 점심을하고 동굴도시를 관광할 예정..
요새에서 시내로 내려오는 일행
<동굴도시 : 우풀리스치케>
도시 입구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송어구이, 닭고기 졸임. 전통 빵과 과실이 미각을 돋우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식사 후 바위산 언덕에 세워진 동굴도시에 올랐다.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 정착지로, 청동기 시대부터 만들어진 암석도시란다. 이후 종교 사찰지로 쓰여, 그리스도 양식과 이종교 양식이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굴 주택이 천개 가까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270개 정도 남아 있다고..
동굴도시 풍경 들
동굴도시 안에는 교회, 극장등 공공시설까지 있었다고 한다. 9세기 경에는 2 만명까지 살았다는데 믿어지지 않았다. 신아래 쿠라강이 흐르고 연안에 풍요로운 평지가 펼쳐져 있는데 왜 이 메마른 산위 동굴에 살았을까 싶다. 군사적 목적으로도 보급이 어려웠을 것이고.... 종교적 목적이라면 또 몰라도
동굴도시 관람을 마치고 역시 긴 동굴통로 출구를 통해 내려오니 쿠라 강변의 아름다운 공원이다. 차를 타고 고리 시내로 향했다
<고 리>
고리 시내 스탈린 박물관에 도착했다. 스탈린이 거주하던 주택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은 곳.
고리는 2008 년 조지아가 친서방 정책을 취하고, 나토 가입을 추진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 러시아가 침공하여 점령하기도 한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란다. . 이 전쟁으로 군인 2천, 민간인 600 여명의 희생되었다고 했다.
데비드는 박물관 안에서 안내 해설자가 해설을 하면 자기가 통역은 하겠지만, 스탈린과 그 유물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말하더라도 자기 뜻은 아니라고 미리 못을 박는다. 조지아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의 3 째로 태어난 영리한 소년 스탈린. 고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트빌리시 신학대학에 입학하였는데 마르크주의에 탐닉하여 중도 퇴학 당하였다고 한다.
박물관 안에는 그의 어린시절, 그의 전성기 사진들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상주 안내인이 해설을 해 주고 있다.
박물관 공사는 1950 년 시작 하여 57년 스탈린 사후 완공 되었으며, 반 스탈린적인 상황변화에 불구하고 박물관은 잘 관리되어 왔다고한다. 박물관 정원 한편에 전성기에 그가 타고 다니던 전용객차가 전시되어 있다.
스탈린 박물관
스탈린의 전용 객실 차량
<아나누리 요새>
박물관을 떠나 숙소인 구다우리로 가는 중간, 아나누리 요새를 들렀다. 아나누리 요새는 15세기 몽고 퇴각 후 발생한 내전시에 건축되었으며, , 유사시 5천명까지 수용 할 수 있었다는데. 적의 이간계에 속아 왕과 성민이 같은날 모두 죽음을 당한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서글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 아래 조성된 저수지와 어울려 지금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아나우리 요새
우리의 오늘 숙소는 구다우리 스키장 리조트내 수수한 호텔. Gudauri Inn. 구다우리는 평창과 동계스포츠 유치 경합을 했던 명문 스키 레조트로 해발 2천미터의 고지에 있다고. 도중 산등성이에 많은 양떼와 소떼들이 점같이 박혀 있어 눈요기가 되었다. 하지만 조지아사람들은 양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대부분 수출한다고 한다..
저녁은 호텔 식당에서 했다. 마침 사무엘 형제의 생일이어서 레드와인을 들며 함께 축하했다
9 월 30 일 일 요일
오늘의 스케쥴은 카쥬베키로 이동하여 츠민다 사메바교회를 보고,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를 거쳐,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사메바는 삼위일체의 뜻.
사메바 성당은 14세기 건설된 성당으로 카즈베키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 위의 성당.
카즈베키산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있었다는 산이란고 한다. 해발 5,047m , 코카서스산맥에서 7번째 높은산이라고.
도중 원형벽으로 감싸진 조망대에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깍아지른 벼랑위의 조망대로 주위 거대한 협곡과 검산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원형 벽 내부에는 18 세기 페르시아와 러시아가 지역 패권을 다툴 때 조지아가 러시아에 병합된 것을 상징하는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다', 중앙의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상은 러시아가 이스람 세력의 터키로부터 조지아를 보호하는 보호자임을 상징한다. 양옆으로는 양국의 신화와 서사를 그려 넣었다..
우리가 지나는 도로는 러시아와 통하는 군사도로 였다고 한다. 좁은 산길로 대형 트레일러들이 줄을 잇는다.
아르메니아도 이 도로를 통하여 러시아와 육상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아르메니아는 이스람국인 아제르바이잔과 적대 관계여서 육로 수송은 조지아에 의존 하고 있다고 한다.
평평한 산 능선에는 양들의 무리가 많이 보인다. 여름에는 양들을 산으로 몰아 여름을 보낸다고 한다.. 곳곳의 허름한 창고형 건물은 양떼들과 몰이꾼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데이비드는 중도에 십자가 무덤들도 가리키며 2차 대전때 처형된 독일 포로들의 무덤이라 했다. 독일관광객들은 꼭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카즈베키>
카즈베키 산과 사메바 교회 (왼쪽 언덕위에 작게 보이는 건물)
마을에서 바라 본 사메바 교회
카즈베키산은 19 세기 유명 시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 원래의 이름은 얼음산, 마을 이름은 츠민다였다. 카즈베키 마을에서 츠민다 사메바 (성삼위일체) 교회까지는 사륜구동 소형차로 이동해야 했는데 걷기도 어려울 정도로 험하다. 마을사람들이 어떻게 이 험한 언덕길을 오가며 미사 참배를 했을까 싶었다.
마침 성당에서는 미사를 보고 있어 정교회 분위기를 맛보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수사가 앞을 막는다. 나도 키톨릭 신자라고 밝혔는데도 정교회 신자여야 한다며 도리를 친다.
동방 정교회의 교회들은 대부분 작고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작은 주택 규모라고나 할까. 거창한 서유럽의 카톨릭 교회에 비하여, 장식이 적고, 미사를 서서 보며, 악기 등 성당내 비치물도 간소해서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공동체 별로 쉽게 교회를 가질 수 있어 교회의 수가 많은 것 같다.
사메바 교회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사메바 교회 역시 작고 아름답다. 마을이 아스라이 멀리 깔려있고 카즈베키산의 만년설과 주위의 장엄한 자연풍광을 즐길 수 있다. 창조주의 권능을 체험함이 종교의 핵심이 아닐까.
험할 산길을 올라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풍광에. 은총까지 체험 할 수 있다면... 저 마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 할까..
다시 찝을 타고 오금절이는 오솔길을 달려 마을로 돌아왔다. 기사에게 인원수대로 팁 7 불을 주니 입이 귀에 걸리며 식당까지 손수 안내해 준다. 점심은 만두를 주요리로 한 조지아 식단으로 마을의 평범한 민가에서 했다
식사후 트빌리시로 귀로 길에 올랐다. 오전에 온길을 되돌아가는 길. 나른히 잠이 들었다 깨니 차가 서다싶게 서행을 한다. 말탄 목동이 이끄는 백여마리의 소떼가 차량들과 어울려 함께 움직인다.
차량 두대도 교차하기 어려운 좁은 산길에서 소떼들은 특유한 느긋함으로 느린 걸음을 옮긴다. 양방향의 왕복 차량들도 소를 닮아 감일까. 서두르지 않고 조르지 않고 경적도 없이 조용히 흐른다.
벼랑 밑 계곡물만 흰 포말을 보이며 서두를 뿐...,
< 므츠헤타 >
카즈베키를 떠나 다음 목적지는 므즈헤타. 트빌리시 북서쪽으로 20 km 에 있는 도시로 쿠라 강과 아라그비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하며 . 5 세기에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이베리아 왕국 - BC 3세기 ~ AD 6 세기에 있던 조지아의 옛 왕국 - 의 수도 였던 곳이란다.

즈바리(십자가) 교회에서 바라본 므즈헤타 전경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 한 유태인이 예수님의 수의를 로마병정으로부터 사서 이베리아 왕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여동생이 호기심에 수의에 손을 대다 바로 죽었다. 그녀의 장례를 위해 그녀의 손에서 수의를 빼려 하였지만, 떼어 낼 수가 없었다. 할수 없이 그녀와 수의를 함께 묻었는데, 얼마 후 그 무덤위에 큰 나무가 자랐다.
4 세기에 성녀 니노가, 성령의 힘으로 그 곳에 예수님의 수의가 묻혀 있음을 알고, 수의를 찾으려 그 나무를 자르니, 나무 윗둥이 쓰러지지 않고 하늘로 솟아 올라갔고, 그 나무 등걸에서는 물이 흘러 나와 많은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 왕과 왕비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두 성당이 므츠헤타에 있다. 두성당이 함께 1994 년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 되어 있다고....
<즈바리(십자가) 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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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를 굽어 보는 산 정상의 즈바리(십자가) 교회 : 4세기, 성녀 니노가 그 잘려진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모두 우러러 볼 수 있는 산위에 십자가를 세웠고 6 세기에 그 자리에 교회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참배객들이 많았고, 의외로 걸인도 많았다
< 스베티즈호벨리 교회 >
시내 중심가에 있어 스베티지호 벨리 교회, 주위에는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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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티즈호벨리 교회*
스베티즈호벨리 교회* 는 4세기 성녀 니노가 예수님의 수의가 묻힌 자리에 작은 교회를 지었던 것을 11 세기 조지아의 국력이 강할 당시 재 건립한 것으로 므즈헤타 시내 중심에 있는, 조지아에서는 세번째 큰 성당이다.
예수님의 수의가 묻힌 교회라는 위상 때문인지 6 명의 왕과 대주교들이 이 곳에 묻혀있어 조지아 교회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조지아 인들은 주말에 이곳에서 결혼 올리고 싶어 한다고 한다. 오늘도 몇쌍의 결혼식과 많은 인파를 볼 수 있었다.
< 사메바(성삼위) 대주교 성당 >
5 시경 트빌리시로 돌아와 어제 미루어 둔 황금돔의 *사메바(성삼위) 대성당*으로 향했다. 2003년 러시아 정교회 같은 큰 성당을 짓겠다는 의욕으로 국민성금을 모아 건립한 조지아 정교회의 대주교 성당이다.
성당 안에 들어가니, 제단의 원형 벽과 천장에 푸레스코 벽화 작업을 마무리 중이다. 푸레스코화는 벽이 완전히 말라야하기 때문에 지금에야 벽화작업을 한 것이라고 한다. 2 층 구조로 되어 있는 프레그코 화에는 윗층에는 예수님이, 아랫층에는 성모님이 12제자를 좌우에 거느리고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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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의 사메바 대성당
본전 지하에도 따로 성당이 있고. 경내에 신학대학과 신부 숙소들이 있어 크고 호화로웠다. 모든 것이 큰 것에 비하여 공중화장실을 찾을 수 없었다. 경내 구석진 곳에 손씻을 물도 없는 것으로 안내되었다. ㅠㅜ
이것으로 조지아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쳤다. 저녁은 트빌리시 시내에 있는 모꼬지 라는 한식 집에서 돼지 불고기와 김치 찌개를 먹었다. 식당 주인의 인상도 좋았고, 오랫만의 한식도 반가웠다.
저녁 시간 남산에 후니쿨라를 타고 올라 야경을 감상하는 선택 관광을 했는데 신통치 않아 모두 실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