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 여행기/히말라야 트래킹기

히말라야 트레킹기 : 제 5 편 코사인 쿤드

반달이네 집 2008. 11. 2. 10:16

 

제 5 편 코사인 쿤드 종주

 

코사인 쿤드 1 일차

                                                                  

           1. 24. 월요일

 

오늘부터 ‘코사인 쿤드’ 트레킹을 위한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코사인 쿤드는 시바신 등 힌두 제신들이 거주 한다고 믿는 곳으로 고도 4,300 미터 이상에 호수들이 분포되어 있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라고 한다.

  밤 동안 하늘은 맑았다. 창밖으로 랑탕 쪽 연산들을 달빛에 어슴프레 바라보며 잠이 들었고 아침에는 새들이 지져귀는 소리에 잠을 깨었다.   전조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티베트 구운 빵(튀기지 않은) 과 겨란 후라이로 때우고, 8시 조금 못 미쳐 출발 했다.   초반부터 가파르게 오르더니 곧 적설 지역으로 들어섰다.   마을을 벗어나 전나무 참나무들이 밀집한 수림지역을 지난다.   고도를 높일수록 눈은 20 센티에서 50 센티까지 깊어진다. 

 

  동쪽 산줄기 사이로 랑탕산이 빼꼼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본다. 눈이 깊어 우리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한 걸음씩 옮겨 12 시에 ‘포플랑 단다’ 의 ‘선세트 뷰 롯지(3,210m)’ 에 도착 했다.   툴로 샤브로의 서쪽 산 능선에 올라 선 것. 서쪽으로는 ‘거네스 히말’ 과 그 연봉이 탁 트여 바라 보이고,  동쪽으로는 빼꼼이 ‘랑탕 히말’이 고개를 내미는 아주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신곰파’( Chankdanbarl : 3,250m ) 가 오늘 목적지 이다.

 

포플랑 단다’ 의 ‘선세트 뷰 롯지(3,210m)의 절경: 거네스 히말의 신성한 아름다움과 포터

 

      하늘이 화창해서 밝은 태양 아래 땀을 말리며, 서쪽 거네스 히말’의 장관에 감격하며 사진도 찍고 하며 점심을 기다린다.   오후의 노정이 거의 수평이동으로 1시간 반 정도 라는데 안도감이 들어 모든 것이 푸근하고 여유로웠다.

 

     정말 기막힌 아름다움을 인간은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까?   사진을 찍고, 그 것을 보여주며 지인들에게 자기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게거품을 내며 말할 수 있는 것 외에 정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따듯한 볕에 앉아 하얀 구름이 길게 허리띠처럼 풀어져  7부 능선을 가로 지르는 눈덮힌 ‘거네스 히말’ 연봉을 바라보며 차라리 보다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아야 한다고 되 뇌었다.

 

     1시 반에 출발했다. 다시 눈위의 행진이다.   전나무와 라리 구라스(로드 댄드론)가 밀집한 수림 지대를 지난다.   적설량이 어느 곳은 60센티를 넘어 수평 이동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었다.   오른쪽에는 운해 속에 잠겨 버린 ‘거내스 히말’ 연봉. 우리는 세아름 직경의 전나무- 높이는 20 미터를 넘었다   - 숲에 햇살이 분광되어 퍼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안나 푸르나’ 와 ‘랑탕’ 에서부터 익숙하게 보아온 라리구라스를 눈여겨 보며, 체력에 따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했다.

 

 

전나무 숲속으로 파고드는 햇살

 

 

      라리 구라스는 네팔의 국화이다,   이곳에서 본 라리 구라스는 줄기가 직경 한자 정도의 고목들인데, 장 타원형의 잎이 한 잎자루에 5개~ 6개 씩 달려 있다.   육질이 있는 잎은 눈이 내리면 고개를 떨구고, 눈이 녹으면 다시 고개를 든다.   봄에 붉은색 흰색 등의 꽃을 아름답게 피우는 진달래과 수목이며, 줄기는 목백일홍 줄기처럼 매끈한 붉은속살에 자작나무 껍질 같이 얇은 겉껍질이 도르르 말려 벗겨지는 특성을 지녔다.   다른 곳에서의 이 나무는 비교적 곳았는데 이곳의 라리구라스 고목은 분재처럼 뒤틀려 아름다움을 더했다.

.

     3시쯤 ‘신 곰파’ 에 도착했다. 입구에‘레조트 오피스’ 인 정부 건물이 있는데 약 2,000 평정도의 정방형 대지에 돌담을 쌓고, 레조트형 건물을 세웠다.   담이 진로를 막고 있어 담을 넘어 통과한다.   이 건물 마당 끝까지 솜덩이 같은 운해에 잠겨. 마치 이 청사가 바닷가의 별장처럼 보인다. 구름 위로 살짝 솟은 산봉우리는 섬처럼 점철되어 있다.

 

 

신 곰파의 호텔방에서 찍은 히말라야의 운해

 

       호텔 시설도 훌륭했다.   정원이 넓고, 건물 외벽을 정갈한 돌벽돌로 쌓고, 창틀과 내부 그리고 건물 외부를 감도는 회랑식 1. 2층 테라스를 목재로 마감한 보기 드물게 훌륭한 2층 건물로 수용능력도 커서 한 건물에 16개 룸을 갖추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북쪽과 동쪽에 창문을 갖고 있는 침실이 배정되었다.  

 

집사람이 지친데다 감기가 심해 일찍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려 혼자 호텔 내부를 둘러본다.   2층 롯지 건물이 2동, 그리고 경내에 수투파와 긴 장대가 깃발을 펄럭이며 서있고, 뒤편에 수도원 건물로 보이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문 닫힌 채 있었다.   승려들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저녁은 인근의 야크밀크로 만든 치즈공장에서 구입한 치즈를 덮은 피자를 먹었다.

 

 

 

코사인쿤드 2일차                       

                                                                           1. 25. 화요일

 

 

      4시 반에 잠이 깨었다.   창밖에 펼쳐진 운해가 예사롭지 않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중천에 보름달이 떠 주변이 환하다.   롯지의 발치까지 하얀 구름이 넘실거린다. 눈에 쌓인 바위섬,  흐릿하게 빛을 잃어가는 별들, 뒷산의 전나무숲, 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3 좌의 수투파, 그 옆 장대 위에 펄럭이는 불경이 적힌  5 색의깃발(타르초).   나의 부족한 감수성은 이 거대한 자연의 조화를 감당할 수 없었다.   다시 삐꺽거리는 테라스를 밟으며 침실로 돌아와 침낭 안으로 파고 들었다. 

 

 

 

      조금 일찍 출발코자 했는데 포터들이 준비를 못했다. 아무래도 우리보다 좋지 않은 여건에서 숙식을 하다보니 시간이 더 들겠지.   8시에 신곰파 롯지를 떠났다.   오늘 목표는 원래 라우리비나 (3,900m)이다.    그 다음의 ‘코사인 쿤드까지의 여정이 만만치 않아 그 곳에서 오늘 숙박을 하고 휴식을 취한 후, 내일 크게 움직인다는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비시즌이라 롯지들이 모두 문을 닫고 철수 했다는 정보를 듣는다.  

 

가이드 만은 비상시 롯지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그곳의 시설과 식량 땔감 등을 사용하고 돈을 두고 나오면 된다고 말하는데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약탈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극지지역이라 생존 여건상 불가피 하여 상식적인 일로 간주 된다고 한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처음의 산행의 여건은 어제와 같았다.   전나무 숲을 지나고 운해들을 옆과 뒤에 두고 나아간다.   한 곳은 화재가 있었는지 벼락을 맞았는지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검게 그을린 기둥이 되어 드문드문 서있다.   여자 대원 한분이 고소증세로 괴로워 하여 출발 초반부터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면 시야가 넓어진다. 이제는 계곡의 한편에서 보는 제한된 풍경이 아니다. 왼쪽으로는 랑탕산이 피라미드같은 등변삼각형의 봉우리로, 동쪽에서 몰려드는 구름떼들을 막아서서 용을 쓰는 모습이 보이고, 서편의 운해는 마침 솜사탕을 풀어 놓은 듯 날렵하게 수백 미터 아래에 깔려 있다.   구름이 저 먼 발치 아래 놀고 있다. 구름위에서 놀고 있는 이들을 무어라고 부를까?  그래 신선이다. 우리가 바로 그랬다.

 

중간에 몇개의 롯지를 만났지만 다 닫혀 있었다.   말이 그렇지 남의 롯지를 부수고 들어가 사용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다음 다음하고 미루며 전진하다, 결국 1시쯤 라우리비나 (약 3,901m) 의 GBR 호텔에 도착 했는데 역시 닫혀 있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비상용으로 가져간 라면을 전부 풀어 포터들과 함께 끓여 먹고, 또 더운 물을 버너로 끓여 수통에 담고 오후 2시 30 분에 다시 출발한다.   계속 오르막이다. 오늘 ‘코사인 쿤드’로까지 강행하기로 결정 한 것 같다.   대원들 모두 지쳤지만 모두 열심히 따라 올랐다.

 

산마루 가까이 하얗고 작은 수투파가 하나 있고, 더 오르니 자연이 크게 할퀴어 놓은 - 아마 빙하작용이리라- 푹꺼진 거대한 지형이 펼쳐진다.   우리는 그 왼쪽 벼랑의 중간에 난 아슬아슬한 적은 오솔길을 통과한다.   오솔길 폭은 좁고, 더욱이 30센티 이상의 눈이 쌓여있고 그 끝이 아스라히 산구비로 사라진다.   오른쪽으로 는 일단 미끄러지면 족히 500 미터 깊이의 황량한 밑바닥으로 떨어져 가루가 될 것 같다.   처음에는 그 길이가 1 km 정도겠지 생각했는데 굽이굽이 돌며 전진하다 보니 족히 5키로 길이는 되는 것 같다. 가슴을 조이며 스틱으로 한손한손 확인하며 우리는 두시간 이상을 족히 시용하여 그 벼랑길을 넘어섰다.  

 

6 km 를 이어지던 아슬아슬한 벼랑길. 사진 찍을 공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한신이 초를 치기위해 건넜다는 촉의 잔교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상황의 어려움에 긴장되어 우리는 우리가 지쳐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오후 5시 40분에 ‘코사인 쿤드’(4,380m) 롯지에 도착했다.   두개의 작은 호수가 황량한 주위에 둘러싸여 눈에 들어온다.   영하의 날씨에 눈에 덥혀 기대했던 정취는 없었다. 롯지에 들었다. 모두 춥고 지쳐서 얼얼해 있다. 방을 배정 받고 빨리 자리에 누웠다.

 

 

 

코사인 쿤드 3 일차

                                                                          

  1. 26. 수요일

  

      어제 오후의 일정이 빡빡하고 어려웠고 롯지는 시즌이 아니라 비워져 있다가 우리 대원들이 갈 것이라는 전갈을 들은 주인 부부가 우리들과 함께 와 준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썰렁하고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해 대원들이 다소 불안해 했었다.

오늘은 ‘라우리비나야크 패스 (LaurebinaYak Pass: 4,610m)를 통과하여 페디(3,830m)나 곱테(3,430m) 가지 진행할 계획인데 예기치 않은 폭설이 변수란다.   망설이던 대장이 계속 진행을 결정 했는데 많은 적설량을 보이고 있어 등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7시 30 분에 출발 했다.   오늘의 코스는 약 400 미터를 급하게 치고 오른 후 계속 하강하게 될 것이고  눈이 어깨까지 쌓인 구간이 있어, 포터들이 장비가 부족하며 럿셀하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비교적 장비가 좋은 우리 대원들이 앞섯으면 하는 요구를 대장이 거절하고 포터중 힘이 좋은 2명을 선두에 세워 럿셀 하게 하고 그 뒤를 우리 대원들이 따르고 다음으로 나머지 포터들이 따르기로 계획을 확정했다.

 

춥고 험한 코스에 적설량이 많아 대장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도 한달 트레킹중 가장 어려운 하루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깊은 눈위를 가기는 앞 두명의 포터가 럿셀을 한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원들이 선두에 서기를 머뭇거려 처음에는 내가 앞으로 나섰다.   쉽지 않았다.  우리가 통과하는 곳은 코사인 쿤드에서 곱테에 이르는 ‘라우리비나야크 패스’(4,610M) 이다.

 

 

코사인 쿤드 종주

 

     거칠게 함몰된 지형 밑바닥에 작은 호수들이 예닐곱 얼어 붙어 눈에 덮여 있다.    눈이 모든 곳을 덮어 거의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한 30 미터 정도를 맨 앞에서 럿셀을 해 보았다.   때로는 어깨까지 폭 빠져,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패스의 정상에는 3시간 30 분후인 11시에 도착했다.   애초 예상하기는 그 정상에 오르면 남쪽 하행길은 정말 산 넘어 남촌에의 길쯤 되는 줄 알았는데, 정상에서 잠시 4줄기의 산줄기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보이고,  안개구름이 버섯구름처럼 솟구쳐 오르는 절경을 보여 주고  바로 안개에 가려 사라진 후,  보이는 것은 우리가 내려가는 산길 양면의 검고 으스스한 바위벽 분이어ㅅ다..   여전히 눈은 깊게 쌓여 있어, 한때는 1 미터 전진하는데 1 분이 걸릴 정도로 지지부진 했다.   할 수 없이 12 시 조금 지나 아침에 마련해 온 티베트 구운 빵으로 15분 내에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전진 했다.

 

가야 할 길  :  헤럼부 고지 방향

 

 

      안개가 피워 오르며 시야도 짧아졌다.   몇 개의 롯지 건물을 만났지만 전부 비워져 있었고  땔감도 식량도 없었다.   4시 가까워 페디(Phedi : 3,630M) 롯지에 도착 했다.   역시 비워져 있었다.   우리 대원들은 체력에 따라 대열이 길게 늘어져, 선두와 후미사이의 거리가 15분 정도 거리가 되었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이 롯지 를 조사해 보니  침실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 맥주, 라면 등 식량이 감춰져 있었고,  부엌 침상 마루 밑에서 많은 장작들이 감춰져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우리는 이것을 하늘의 도움으로 알고 여기에서 오늘 묵기로 했다.   오래 비워 놓은 부엌 난로에 불을 지피고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고 부엌 거실의 난로가에 앉아 옷을 말리며 얘기를 나누다 함께 쓰러져 잤다.   이렇게 오늘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코사인 쿤드 4 일차

                                                                      

      1. 27. 목요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한참을 쓰지 않던 난로에 장작불을 피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 장작을 넣을 때마다 웬일인지 난로는 밑으로 매운 연기를 토해낸다.   이미 4~50년 전에 난로불 지피기 따위는 그만 두었을 P사장이나 H사장이 눈물 범벅이 되어 불을 관리하느라 고생을 했다.   나도 미안하고 불안해서 잠자지 못하다 자정이 지나서는 난로불을 지키며 다른 대원들의 서비스에 응답을 했다. 

 

추위와 허기와 고달품, 게다가 매운 연기에 찌들은 도둑 고양이 같은 일행들

 

 

      용변을 보러 마당에 나섰다.   달은 약간 이지러지기는 했지만 밝게 떠올라 주위가 눈에 반사되어 환했다.   어제는 안개로 느끼지 못했었는데 롯지의 오른쪽 왼쪽에 칼같이 선 바위산이 솟아 있고,  아래로는 깊게 계곡져 오른 쪽으로 휘어지는 아슬아슬한 곳에 롯지가 앉아있다.   바람이 검산 계곡을 �으며 뿌리는 소리가 음산했다.

 

하룻밤 신세진 빈 롯지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8시에 롯지를 떠나 출발했다. 목표는 곱테 또는 길게 타레파티까지 갈 수 있었으면 했다.   포터 두명이 럿셀에 나서고 우리는 뒤를 따른다.   롯지를 나와 왼쪽 아래로 내려서면 다시 어제와 같은 전인미답의 적설지역이다.   선두에서 럿셀을 하는 포터들이 용케도 길을 찾아 나아간다.   때로는 허리까지 빠지며 숨겨진 나무다리를 찾아 개울을 건너 왼쪽 산줄기의 중간을 치고 오르더니, 다섯 번인가 여섯 산고비를 돌고, 다시 그 숫자 만큼 치고 오르며 험난한 오솔길을 만들며 나아갔다.   

험난했던 하행길 :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 시켰다 .

 

       아슬아슬한 곳이 있어, 제일 꼬마인 17살의 포터 샴이, 나르던 카고백을 50 미터 아래의 개울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한 사건이 있었다.   용케 젊고 용감한 선배 포터들이 도저이 다시 오르지도 못할 것 같은 그 벼랑을 내려가 그것을 주워 끌고 올라왔다.   이들의 용기와 협동성이 볼만했다.

 

      산행중에 가이드 만이 오른쪽 높은 봉우리를 가리키며 (Chhyarkung Choli 4,552m) 몇 년전 타이 항공이 추락하여 일본인 수 백명이 죽은 곳이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자던 숙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상하게 우리는 점차 고도를 낮추어 가면서도 곳곳에서 엉치까지 빠지는 눈을 다지며 산길을 오르느라 체력을 소모했다.   어제의 숙식이 부실했었던데다  5시간을 강행군 하여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오른 곳에 텅 빈 찻집만이 덩그라니 있을 때 거의 절망감이 들었다.   산넘어 험한 산속에 사람 흔적이 없는 눈길을 오르고 또 오르는데 여전히 롯지는 없고 또 다시 내리고 오르는 산행의 연속이었다.   저기에야말로 음식과 물이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항시 도사리고 있었다.

      1시에 도착한 빈 찻집에서 버너를 키고 눈을 녹여 차를 마시고, 식수용 더운물을 만들어 수통에 담아 다시 한 시간여를 걸어 3시에 겨우 ‘곱테(3,430m) 롯지'에 도착 했다.  하늘의 도움으로 주인이 있었다.   주인은 2주일 만에 처음 찾아온 손님이라고 반가워했다.   뜨거운 찌야와 계란후라이를 앞에 놓고 눈물이 날 지경이다.

 

고행끝의 환희: 곱테 롯지에서

 

 

       동계시즌에는 거의 트렉커 손님이 없다고 한다.   대원들은 모두 안도하며, 이 경제 감각이 없는 타망족 롯지 주인을 고마워했다.   백두산님이 호기를 부리신다. “ 이것이 트레킹이야!” 

 

겨울 시즌에 특히 적설량이 많을 때 ‘코사인 쿤드’에서 ‘곱테’ 에 이르는 이 코스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60대 후반의 노령의 어른이 2 분이나 있는 우리 팀은 그분들의 뛰어난 의지력과 체력에도 불구하고 기동성이 약했다.

 

      저녁을 먹은 후 테이블에 앉아 난로를 쪼이며 쉬었다.   오늘의 어려운 강행군에도 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즐거웠다.   그 자리에서 가이드 만이 영어로 인사와 설명을 하고 백두산님이 통역을 해주신다.   설명이 어떻던, 어제 오늘의 스케줄관리에 있어서 만은 가이드로서 무책임 했다고 생각한다.   눈 쌓인 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아 하마터면, 선두에 섰던 대원들의 개별적인 행동을 야기 시켜, 최악의 경우 사고를 만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나는 만이 훌륭한 가이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제 저녁에 빈집인 페디롯지에서 숙박하지 않고 산행을 계속하기를 강하게 주장한 선두구릅의 대원들이 있었는데(대장은 지친 대원을 보호하느라 후미에 쳐저 있었음), 그들도 늦어도 두시간 정도면 오늘 6시간 걸린 거리를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듣고 있었었다.

 

 

코사인 쿤드 5 일차

                                                                      

     1. 28. 금요일

  

      8시에 곱테 산장을 나왔다.   타레파티 (3,570m)에서 점심을 먹고 망겐고스(3,220m)에서 저녁과 숙박을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적설량이 아직도 만만하지 않고 어제, 그제의 산행 속도를 감안 하면 다소 어려운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눈덮인 산길을 걷는다.   오늘 나의 컨디션은 양호했는데 집사람이 걷는 품이 어려워 보인다.   눈앞에 닿아 보이던 타레파티가 의외로 멀었다.   3시간 걸려 11 시에 도착했다.   도착할 때쯤 눈발이 조금 날리더니 타레파티에서 점심을 하는 동안 눈발이 커졌다.   오후의 산행도 어렵겠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대원 중 몸이 불편한 여성 한분이 어려움을 호소해 대장이 급히 행선지를 변경해 헤럼부 능선을 타려는 계획을 바꾸어 여기서 바로 멜란치곤(2,530m) 으로 바로 하산하는 루트로 변경 했다.

 

빠른 하산 코스 결정으로 마음이 가벼워진 여성 대원들이 하행길을 즐기며

 

      이 루트를 택할 경우 내일 저녁은 고도 900m 지역에서 잠을 잘 수있게 된다. 이 여성 대원은 감기로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였는데, 심한 감기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고 있었던 것 같다. 눈길의 어려움과 숙식의 불편에 시달리던 대원들 모두가 환호했다.

 

1시에 롯지를 나와 하산길을 택했다.   경사가 급하고 눈이 수북이 쌓인 삼림 지역을 내려오면서 일부 여성 대원들은 눈 미끄럼을 타며 아이들 같이 좋아했다.   경사가 급하고 수목들이 우거져 있다.   열길 높이의 전나무와 라리구라스가 대종을 이룬다.   라리구라스, 참 네팔의 산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3시간 반 정도를 내려와 멜란치곤(2,530m)에 닿았다.   주택들이 반듯한 부유한 동네로 느끼어 지는 곳이다.   ‘와일드 뷰 롯지’에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10살난 아들이 기품이 있다. 가구와 식기들도 깔끔했다.

 

 

   

코사인 쿤드 6 일차

                                                                               1. 29.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두른다.   오늘 여정은 여기 멜란치곤(2,530m) 에서 팀부(1,580m)를 거쳐 탈라마랑(960m) 까지 이동 하는 것.. 1,500 미터를 하강하는 30 키로 정도의 여정이다. 10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멜란치곤’ 에서 급하게 내려, 얼마 되지 않아 ‘멜란치 콜라’ 상류에 닿는다.   맑은 물이 흐르고 5그루의 나무가 분재처럼 자라고 있는 큰바위 밑에는 진리의 눈이 그려진 수투파하나가 우뚝 솟아 있고, 그 옆에 깃발을 펄럭이며 허름한 가옥이 한채 있는데, 한 노인이 마당 끝의 나무에서 계란 모양의 과일을 딴다.   도마도 같기도 하고 가지 같기도 한 이 과일을 포터들은 도마도라고 한다.   맛을 보니 시어서 도저히 도마도와 같지 않다. 포터들이 그것은 삶아 칠리소스등으로 가미하여 먹는 도마도라고 한다.

 

산을 내려 와서 즐거워 하는 여자 대원들. 집사람은 설원에서의 자외선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

 

 

      ‘메란치곤’에서 팀부까지의 여정은 거의 6시간이 걸렸다. 급한 하강과 상승, 저멀리 아래 아스라이 가늘게 흐르는 ‘메란치 콜라’ 가 넓은 강바닥 위로 가늘게 사행으로 흐른다. 우거진 나무, 절벽, 폭포, 기암괴석 출렁이는 흔들다리들이 어울려 산행길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장식했다.   설악산 수렴동 계곡, 천불동계곡, 지리산 한신계곡, 뱀사골 계곡, 강원도 불영계곡 등등, 우리 금수강산 어느 계곡에서나 익숙하게 보아왔던 그런 아름다움... 그러나 그보다 규모가 크고 변화가 많아 꿈속을 거니는듯하다.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스틱을 접고 터덜거리며 두 다리로 걷는다.

 

마을을 지난다 가축들은 야크가 사라지고 소와 버펄로 들이다.   처마끝에 옥수수를 달아 말리는 것도 정겹다.   집앞 외양간의 버펄로를 신경 쓰다 집사람이 멍석위에 말리고 있는 옥수수알갱이를 툭 쳐서 땅에 흗뜨려 트린다..  내가 황급히 허리를 굽혀 옥수수 알갱이를 주워 담자, 주인이 달려와 말리면서 오히려 미안해 한다.

 

겨자 꽃이 활짝 핀  전원 풍경

 

 

      중도에 젊잖게 생긴 인도계 남자가 올라오며 말을 건다.   저 위쪽 마을의 선생님이라고했다.   저 위에는 민가 몇 채와 까르르거리며 놀던 아이들 몇 명밖에 없던데 생각하는데   어느나라에서 왔느냐 묻고는 여기 풍광이 어떻더냐고 물어 온다.   나는 Heavenly Beauty 라고 답해 주었다.   이 촌마을 선생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한 작은 마을 앞에, 한 여덟살쯤 보이는 여자 아이가 길옆 간이 수도시설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주머니에서 얼마 남지않은 캔디를 몇알 꺼내주었다. 공손하게 받아 옆의 잔디에 놓더니 머리 감기를 계속한다. 그 차분함 품이 안아주고 싶도록 귀여웠다.

 

오솔길에 15세쯤 보이는 소녀가 댓가지로 원추형으로 역은 짐나르는 바구니에 마른 낙옆을 주워 담고 있다.   불쏘시개 감이리라.   작은 키 도톰한 코에 얼굴선이 곱다.   왜 여기의 여인들은 우리를 그대로 빼어 닮았을까.   우리가 어려운 삶에서 애모하였던 우리 누이들의 얼굴들이 네팔 한 구석마을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웬일일까.

 

 

마오이스트 관할지역임 을 알리는 깃발

 

        팀부에 도착 했다.   동네 젊은이들인지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부담스러웠다.    마침 유럽풍의 걸출하게 잘 생긴 입성이 좋은 키큰이가 있기에 ‘아! 외국인 트레커이구나’ 하는 생각에 ‘너희들 올라가는 거니?’ 하고 물었더니,  흘긋 돌아보고는 묵묵부답이다.  뭐 이런 몰상식한 산악인이 있나 하고 있는데 가이드 만의 행동이 수상쩍다.   근심스러운 표정에 안절부절 하며 왔다 갔다 한다.  

 

이들이 마오이스트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우리는 이들에게 1인당 1,000 루피에 해당하는 돈을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뜯겼다.   돈이 아깝고 씁씁 했지만 그래도 백두산님의 ‘ 이것이 트레킹이야’ 하는 명언이 가슴속에서 울렸다.   정말 이 트레킹이 아직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카드는 몇 개가 또 남은 것일까.

 

팀부에서 점심을 들었다. 벽에 네팔어로 큰 벽보가 쓰여 있어 만에게 물었더니 여기에 댐을 세우고 저수지를 만들어 카트만두 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공사를 시행한다는 정부공고라고 한다.   정부의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사업지구에 마오이스트라니 황당했다.

 

팀부에서부터는 다리공사와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 내년 쯤 이면 팀부에까지 차가 들어 올 것이다.   만이 마오이스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 스누와르족 중년 사나이는 상당히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마오이스트들은 코가 낮은 몽고리안들이 아니고  대부분  인도아리안족인 코 큰 친구들이며,  이들은 일은 안하면서 주민들을 괴롭힌 다고 했다.   호기심에 한번 튕기어 보았다. ‘그들은 썩은 왕정에 대항하는 정의의 용사들이 아니냐 ?’   이미 공산주의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왕정은 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냐 ?’ 고 했더니,  왕정도 싫지만 그들은 더 싫단다.

 

풍      경

 

       이제는 기온이 상승해서 한국의 초여름 날씨가 되었다.   오늘 하루 중에 겨울에서 초여름까지 사계절의 날씨를 모두 경험한다.   주위에 왕대나무, 바나나 나무들이 무성하다.   길도 넓어지고, 도로 옆의 수로시설들도 격식을 갖추었다.       길옆에 공사 안내판이 서 있다.. 만이 읽어 본 후 이 도로 공사 소요 자금의 일부가 한국의 원조 자금으로 충당 되었다며, 아마도 원조금의 상당 부분이 고위관리들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었을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아 이 고리타분했던 시대의 우리들의 옛 초상이여..!

 

탈라마랑에 진주하며

 

      탈라마랑의 우리 숙소는 대로 옆에 있는 3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호텔방은 좁고, 식당과 화장실과 샤워장이 옥상 노천에 마련되어 있다.   짐을 풀고 몇몇이 어울려 옆의 가게에서 맥주를 마셨다.   포터들이 따라 오기에 그들에게도 맥주를 사 주었다. 양어르신이 대원 전원에게 닭튀김으로 한턱 내신다.   모두 긴 여정이 마무리 되었다는 안도감에 흐뭇했다. 

 

 

코사인쿤드 7 일차

                                                                       

 

      1.  30.  일요일

 

탈라 마랑을 쫒기듯 떠나는 대원들

 

 

      어제 저녁 닭고기와 맥주를 먹고, 피곤이 몰려와 잠들어 있는데, 잠결에 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며 치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아이들이 싸우는 소리려니 하고 그냥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들은 이야기는 의외였다.   밤에 우리가 들어온 후 동네 건달들이 마오이스트를 칭하며 포터들에게 시비를 걸며, 한국인들은 나쁘니 내일 새벽 일찍 떠나라며 시비를 걸어 왔단다.   격분한 포터들과 한바탕 패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대장은 당초 여기서 카트만두에서 오는 전세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 계획을 바꾸어,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동네를 빠져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 우리 대원 몇 명과 포터들과 호텔옆 술집에 둘러 맥주를 마시려는데, 어떤 술취한 젊은녀석이 빌붙어 든다.   체구도 왜소하고 술이 곤드레한 놈이라 그냥 무시해 버렸는데, 아마 이 동네 건달들의 똘만이쯤 되었던 모양이었다.   주위에 도로공사도 하고 다소 북적거리다보니 이런 쓰레기들이 모여 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정치적 후진성이 낳은 사회적 후진성의 한 모습일 수 있겠다.

 

우리는 예정보다 한시간 반쯤 빠른 8시 반에 호텔을 나서 카트만두 방향으로 걸었다. 밤에야 건달들이 득실거리건, 낮의 네팔 정경은 아직도 아름답다.   이 ‘멜람치 콜라’ 계곡의 물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비교적 석회질 함량이 적어 보인다.   토질도 검고 비옥하며, 농지에 퇴비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냇물도 맑아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월초 필듯말듯하던 겨자꽃이 이제는 활짝 피어, 밭 전체를 노랗게 물들여 버렸다.   이들이 좁은 경지에 식량이 아닌 - 식량으로는 감자를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 겨자를 많이 키우나 중얼 대었더니 옆의 여자대원 한분이 카레에 겨자를 많이 사용한다고 답해 주었다.   강폭이 넓어지고 강유역도 넓어져 아마 네팔에서 가장 비옥한 곳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정부군 초소

 

      버스는 우리가 출발 한 후 한시간쯤 지나 도착했다.   9시 반에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리다가 정부군의 검문소를 만난다.   그 이전까지 마오이스트 들이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이야기다.

 

포 터들과의 작별 인사

 

 

      우리가 카트만두 타멜 지역의 티베트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반경. 로비에서 간단히 포터들과 작별 행사를 가졌다.   가장 선임이신 백두산님의 영어로 간단한 포터들에 대한 노고 치하 말씀이 있었고, 각 대원들은 자기 포터들과 그동안 정들은 포터들과 얼싸안고 덕담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공식적으로는 자기 포터에게 20 불씩 팁을 주기로 하고, 주최측이 각자로부터 받아 가이드 만을 통하여, 각 포터들에게 분배 하였는데,  이번 랑탕.- 코사인쿤드-.헤럼부 코스는 기간이 길고 예기치 않은 폭설로 포터들의 고생이 많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 우리 부부는 프레디프와 랙에게 가방을 침실로 나르라고 지시하고 침실에서 10불씩 더 주었다.   둘다 선량한 대학생들, 프레디프는 수줍음을 타는 사범대학생으로 졸업 후 지리교사를 할 예정이라고 하고, 말수 적은 렉은 나이가 26세인데 아직 결혼을 안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을 빌어 주며 다시 포옹하고 등을 다둑거려 주었다

  짐 정리를 하고 밖에 나가 아이쇼핑을 하는데 상인들이 춥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한다. 우리가 랑탕과 코사인 쿤드를 해메는 동안 기온이 급강하 하고 에베레스트 지역은 폭설이 내려 국내 항공이 3 일씩이나 결항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코사인 쿤드’에서 고전한 것이 이유가 있었다.

 

      이래서 우리 12명 대원의 안나푸르나, 랑탕, 코사인쿤드-헤럼부의 3개 코스의 연속 트레킹이 공식적으로 종료 되었다.   이번 25일간의 트레킹의 성공이 나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은 나와 집사람의 건강이 꽤 괜찮다는 자신감을 찾았다.   생소하고 긴 여행을 탈없이 마무리 했으니 말이다.   체중도 5 키로 정도가 빠지면서, 배가 홀쭉해져 신혼초의 그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지적 능력이 아직 쓸만하다는 것. 특히 감수성은 직장생활을 하며 너무 무디어 진 것이 아닌가 우려 했었는데,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서 다시 활기를 찾지 않았나 하는, 생명력을 되찾은 것 같은 자심감이 든다는 것이다.   또 네팔의 아름다움, 네팔인의 순수함, 그리고 불합리한 사회정세에 대한 네팔인들의 절망감을 공감 할 수 있는 순수함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