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 여행기/히말라야 트래킹기

히말라야 트레킹기: 제 2 편 안나푸르나 트래킹

반달이네 집 2008. 11. 2. 10:17

제 2 편 :안나푸르나 트래킹

 

 

안나푸르나 1일차                                                                 

 

 

1, 7. 금요일

 

 

 

       7시 반에 출발하여 9시경 페디( Phedi : 1.130m )에서 버스를 내려 등산을 시작 했다. 초반 1시간 정도가 급경사였고, 그 후 비교적 완만한 고지를 걸어 고지 농가들을 지난다.   담푸스 (Dhampus: 1,650m)를 거쳐  Pothana Lodge (1,900m) 에서 점심을 먹고 2,100 m 고지를 지나 다시 1,700 m 로 내려와 Tolka ( 1,700m)에서 저녁을 하고 Tolka Intl Lodge에서 잤다.

 

 

 

 

  

        점심은 ‘구롱 브레드(구롱족의 빵)’ 에 네팔산 혼합과일 잼과 꿀을 발라 점심을 했다. 삶은 계란 2개를 곁들여 먹었다.   톨카에서는 저녁을 먹은 후 포터들과 캠프파이어를 하며 친교 파티를 가졌다.   초반에 머뭇거리던 포터들이 흥이 나자 춤과 전통 노래로 흥을 돋우며 지칠줄 모르고 논다. 저녁은 네팔 전통 주식인‘달바트’로 했다.  먹을 만 했다. 

 

  마차푸차레와 히말라야 연봉들 :

     새벽에 호텔정원에서 ‘마차푸차레’ 설봉이 허공에 떠있는 것을 감격스럽게 본 것을 시작으로, 버스로 ‘페디’ 까지 달리면서도 차창으로 ‘안나푸르나 남봉’ 등 히말라야 연봉들이 빙설에 덮여 허공에 신비스럽게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카라의 고도가 800m 이고, 이 봉우리들이 거의 7,000m 이상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푸른 상록수림 위에 떠 있는 설봉의 모습은 정말, 신이 사는 산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빙설에 덮여 푸른 산위 허공에 신비스럽게 떠 있는 히말라야 연봉들

 

♧  포카라의 가로수들 :

     보통 두 아름 이상의 거대한 고목이 가로수 역할을 한다.   빨강, 노랑, 초록 등의 페인트를 바른 나무들은 신목이라도 되는 지, 깃발등을 가지에 두르고 있었다.   그 위로 보이는 설봉의 모습은 정말 신비스러웠다.  

    

집사람이 포터들이 짐나르는 법을 시연해 보고 있다 .

♧  포터들의 짐 나르는 모습:

     등에서 엉덩이까지 카고백을 걸치고 이마에서 허리높이의 카고백 뒤쪽을 연결시키는 띠로 바치고  날랐다. 포터들의 체격이 가늘고 왜소해서 다소 안쓰럽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생들로 학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포터 디키 :

     포카라에서 고용하였고, 34세. 16살의 큰아이와 10살의 막내가 있다고 한다. 가이드 자격증도 갖고 있는데, 평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트레킹 시즌에는 가이드를 하거나 포터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사람 포터는 ‘프레디프’ 작고 허약했으며 20 키로 정도의 카고백을 힘들어 했다. 사범대학을 다니며 졸업 후 지리교사를 하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나의 포터 디키

 

♧  랫삼 휘리리 노래 :

     ‘내 마음은 언덕위에 펄럭이는 깃발 같아요, 하늘로 날라 올라야 할지 언덕에 머물러야할지 모르겠군요. ’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그대에 대한 사랑이 깃발처럼 휘날린다는 내용의 노래로 상당한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저녁 파티에서 이들이 군무를 추며 부르는 노래들이 모두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민속노래였다. 아마 축제에서 젊은 남녀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류의 노래 같아 보인다. 경쾌하고 호소력 있는 반복되는 리듬과, 랩성의 가사로 끊임없이 이어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였다.

 

 가이드 ‘만’ :

     43세로 5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한다. 첫아이가 대학에 다니고 둘째는 이번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 하였다고 자부심이 대단 했다.  몽골계의 일족인 스누코족 으로 인상이 좋은 남자다.  한국인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영어를 잘하고 한국어를 제법 했다.   UP산악회와는 계속 관계를 갖고 있고, 눈설미가 좋아 호감이 간다.

나와 대화를 나누다 한국에 네팔 노동자가 많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그들의 실상을 설명하니까. 오히려 자기 아들이 한국에서 일할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한다.

   

♧  산지의 학교 모습 :

     허름한 창고 같은 건물에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한다. 학교 규모는 크지 않아 우리 분교 수준인 것 같았다. 돌담에 일부 판석을 계단식으로 돌출시켜 밟고 올라 교문 같이 학교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이런 궁색한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유니폼을 정갈하게 입고 자세가 단정 했으며 귀여웠다.

 

초등학교 모습

♧  고산지대 여인들 :

     산골 고산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몽골계통의 여인들의 이목구비가 아담하고 곱다.     도툼한 얼굴에 아담한 코, 큰 눈과 고운 얼굴선이 아름다웠다.   페디에서 한 티베트 여인에게 ‘진스톤’목걸이와 야크뼈 장식이라는 팔뚝걸이 장식을 200 루피에 샀다. 대부분 모조품이라고 한다,  티베트족이라는 이 여인은 우리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야무지고 영리한 젊은 여인의 모습이다.

 

 롯지(Lodge) :

     한평 반 남짓의 크기에 침대 두개가 덩그러니 있고, 흐릿한 백열등이 매달려 있다. 옆방에서 소근 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안나푸르나 2일차         

                              

                                                                                

 1. 8. 토요일

 

 

     이른 새벽 롯지를 나서자 ‘안나푸르나 남봉’ 의 정상이 하늘에 떠 있다.   아침을 바나나 팬케이크와 계란말이로 하고, 8시 쯤 출발했다.   롯지 앞에서 내리막을 내려와 산골 마을인 란드룩(Landruk : 1,565m)을 거쳐 모디 콜라( 콜라 = 강) 변을 걷다 ‘뉴브리지’에서 잠시 쉰 후 급경사를 오르내린 후, 다시 모디콜라 건너 지누단다( Jhinu Danda : 1,780m)에 1시경 도착했다.   점심은 ‘나마스테 게스트하우스’ 에서 짓이긴 감자와 수프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한 시간 정도 휴식시간을 가졌다.

 

 

      산행 중 푸른 수림 위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남봉’이 환상적이었다. 오솔길 양편으로 소와 버펄로 들이 방목 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급경사면을 누비며 댓잎이나 나뭇잎, 작은 가지를 뜯어 먹으며 한가로이 거닐었는데, 때로는 길을 막기도 했지만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급한 경사면에 소를 놓아 키우니까 그 경사면을 마음껏 다니며 나뭇잎을 따먹고 작은 나무를 뭉개며 다닌다 .   산사태의 원인도 되고 일종의 사막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누단다’ 맞은편 산 정상까지 계단식 밭이 펼쳐져 있었고, 농가들이 그 고도에 맞추어 수직으로 분포되어 있는 풍경이 특이했다. 그 옆에는 큰 산사태가 나서 칼로 내려 친 듯한 큰 상처도 보인다.

 ‘지누단다’에서 출발 급경사로 촘롱(Chomrong: 2,170m)으로 이동했다.   4시에 촘롱에 도착했다.  모디콜라 서벽을 기어 오르는 코스로 헐떡이는 숨을 정리할 때는 눈을 내려 저 아래 도도히 흐르는 흰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산정까지 이르는 계단식 밭

        촘롱에서 는 닭 백숙으로 저녁을 했다.  저녁을 하고 있는데 ‘촘롱’ 부녀회의 대표가 와서 민속공연을 히겠으니 찬조를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부셔진 다리를 수리할 기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30불 선을 요량하고 응해 주었다.

공연 초기에는 조금 시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포터들과 부녀회의 호흡이 맞아, 흥취가 돌았다.  우리들은 차라리 멍석을 펴주고 슬그머니 빠져 나오면 되는 자리였다.   그들에게 40불이 전달 되었다. 대원중의 한분이 자진해서 10 불을 얹어 주었기 때문이다. 돈이 전달 된 후에도 그들은 한참을 흥겹게 놀다가 10시 쯤 파하고 돌아갔다.

                      

 나뭇잎 피리를 불던 포터 챈들러 : 

     페디에서 경사를 오르고 휴식을 취할 때, 그는 나뭇잎을 따서 피리를 불었다. 소리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한 음악을 연주한다.   ‘랫삼 피리리’ 등 민속 음악을 연주하기에 나도 나뭇잎을  물고  시도를 해 보았는데 소리도 나지 않는다.          

 

어제 저녁 캠프파이어에서 그는 조용히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다 감자를 던져 넣었다.  나는 금방 타버려 숯덩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불성실한 행동을 속으로 탓했는데, 그는 한통의 감자를 불구덩이 곳곳에 골고루 던져 넣더니, 순서에 따라 하나 씩 건져 내어 우리 모두에게 맛을 보였다.  놀랍게도 감자는 모두 먹기 좋게 잘 익어 있었다.  그리고는 동료들과 춤추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방 선생이 그는 안나 푸르나 가이드로 네팔 여행 관련 홈페이지에 칭찬이 올라오고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영어도 잘했다.  얼굴은 다소 험악하여 처음에는 호감이 가지는 않는다.  오늘 저녁 민속 공연에 그는 집사람에게 그 자리에 나온 부녀 중 자기 여동생이 있다고 자랑 했다

 

        

♧  귤같이 생긴 열매가 나무등걸에 매달리는 밀크나무:

     잎은 오동잎을 닮았는데 열매가 가지가 아닌 등걸에 매달려 있어 처음에는 기생 식물 열매인가 했다.  포터 중 한명이, 밀크 나무라며 열매는 붉게 익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 준다.  나뭇가지를 자르면 밀크 같은 액체가 나오는데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네팔의 화장실 :

     화장실은 어느 곳이나 비교적 깨끗했다.  게스트하우스나 호텔은 물론 산행 중에 들르는 로지에서의 화장실이나 민가의 화장실도 아담한 변기 구명에 발받침이 있는 깨끗한 상태를 유지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경제적으로는 더 부유한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환경 보호 정책 때문일까. 싶다.

 

 

 

안나푸르나 3일차                                                         

 

 

1. 9. 일요일

남편은 겨릿소로 써레질을 하고 아내는 씨를 뿌리는 정겨운 모습
산행길에 만난 직녀

 

     ‘촘롱’에서 ‘시누와(2,340m)’, ‘밤부’를 거쳐 ‘도반(2,506m)’까지 이동 했다.   촘롱 마을 - 인근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이라고 한다 - 을 가로 질러 ‘메디콜라’ 강변으로 내려와 그 강을 건너 다시 ‘시누와’ 까지 오르는 코스이다.   어제의 급경사 오름을 다시 내려와 다시 그 등고로 오르는 실속이 없는 산행길이라고나 할까.   ‘시누와’에서 ‘도반’까지는 정글 지대로 물결치듯 산줄기가 반복되어, 깊은 산골의 위엄을 보여 주는 코스이다. 점심식사는 ‘밤부’에서 했다.  

 

     시누와에서 밤부사이의 노정에서 약간 빗발이 뿌리더니 점점 심해져, 밤부를 지나서는 싸레기와 눈으로 변했다.   도반에 도착해서도 한참동안 눈이 더 내렸다.   중간에 외국인들과 한국인 여자 두분이 하산하는 것을 만났는데  MBC(마차프차레 베이스 캠프) 에 눈이 많이 내려 ABC(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 산행을 포기하고 내려온다고 했다.  눈발이 세어지면서 내일 등정에 대해 대원들이 불안해 한다..  대장이 저녁 후에 대원들을 소집하여 내일 산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눈은 8시경 멎었다,

 

     오후 9시가 되면서 하늘이 총총해졌다. 소변보러 일어난 새벽 한시, 어려서 즐겨 보던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하늘 정중앙에 박혀 있다.   ‘메디 콜라(강) 상류라서 물 흐르는 소리가 시원 했다.

 

 

 

 

안나푸르나 4일차                                                         

 

 

 1..10. 월요일  

게스트하우스 위로 보이는 마차프차레봉 정상

     ‘마차프차레’ 정상이 도반 게스트 하우스 지붕위에 훌쩍 솟아 올랐다.   우리는 마차프차레를 오른쪽 ‘메디콜라’ 건너에 두고 행군 했다.   어제 내린 눈 녹은 물기로 등산화가 젖어왔다.   좌우로 ‘마차프차레’와 ‘안나푸르나 남봉’을 두고, 때로는 급경사를 오르고 때로는 산등성이를 구비 돌며 걸었다.   산정에서부터 쏟아지는 폭포, 사과가 단칼에 잘린 것 같이 양쪽으로 널부러진 큰 바위 등 풍경등이 이채롭다.   메디콜라는 만년설 녹은 물임을 과시하듯 힘찬 소리로 등정 내내 귀를 유쾌하게 해 주었다.

  

    7시 출발해서 점심장소인 ‘데우랄리’에는 12시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고소증세와 혹한의 위험이 있다고 대장이 주의를 주었다.   점심은 밀크초코렛 티, 익힌계란 2개, 감자 죽이다.   점심을 먹으며 하늘을 보는 순간 구름위로 산 정상이 신기루 같이 우뚝 솟아 있다.   황급히 사진을 찍고 나니 안개가 주위를 덮어 버렸다.   오전은 청명했는데 오후에는 안개 속 행군이 되겠다.. 이제부터 MBC 까지 급경사란다. 약 2시간 반 내지 3시간.  

     ‘데우랄리’에서 12시 40 분에 출발 했다. 급경사를 오르니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진 큰 하천이 있다. 3,000m 고산의 하천이면서도 강폭과 유역이 넓으며, 차가운 물이 사나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유역에는 대나무( 가는 오죽)가 자생하고 있어 신기했다. 오후 4시경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에 도착했다. 데우랄리에서 MBC 까지는 급경사가 곳곳에 있어, 대원들이 많이 지쳤다. 처음 출발할 때는 맑고 푸른 하늘이었는데 왼쪽 산봉우리에 검은구름 한조각이 서서히 엉키며 커지더니, 저녁나절에는 전체가 어두워 진다. 오후7시부터는 로지 전체가 어수선할 정도로 싸라기눈이 쏟아지더니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아침에 보니 침실 문안으로 눈이 들어쳐 있었다. 추위는 예상했던 것 보다 춥지는 않았다. ‘마챠푸차레’가 로지 정면에 버티고 서 있고, 뒤창으로는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보인다.

 

♤ - 잃어버린 스틱 :

    눈덮인 산정을 벼랑 끝에서 찍었었다. 산행을 계속하다, 스틱하나가 없는 것을 발견 했다. 사진 찍은 장소를 찾아보았으나 스틱은 보이지 않는다. 포터 ‘프라카스’가 따라와 저 멀리까지 달려 간다. 아마 식당을 찾아, 놓고 온 것인지를 확인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이를 제지시키고, 찾지는 못했지만 공연한 수선을 피운 것이 미안해서, 그에게 팁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찾았으나 바로 찾아지지 않았다. ‘ 아차! 지갑도 잃었구나!’ 당황을 하다, 장갑을 벼랑 아래로 흘렸다. 프라카스가 그걸 줏으러 내려 가, 그곳에서 더 한단 아래, 위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잃어버린 스틱을 발견했다. 프라카스에게 팁을 100 루피를 주면서 종교를 물었다. 크리스찬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이 장갑을 스틱에게 보냈는가’ 보다고 농담을 하니 빙그레 웃는다.

 

 

 

안나푸르나 5일차          

                                                                                

 

  1.11. 화요일 

 

     오전 5시 30분에 ABC 를 향해 출발 했다. 어제 온 눈의 영향으로 눈이 30cm 쌓여 있었다. 고도를 3,600m 에서 4,130m 로 올리는 것으로 처음에는 별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제는 매우 벅찼다. 6시반경부터 주위가 밝아오고, 산정상에도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설봉을 보여 준다, 초반에는 급한 경사를 오르지만 종반에는 완만한 경사로 바뀌었는데도, 숨이 급해지고 마지막 1,000m 남은 곳에서는,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지쳐 버렸다.

 

안나 프르나 베이스 캠프에서의 기념 사진

 

     한걸음 한걸음 숨 가쁘게 올랐다. 처음에는 집사람과 내가 선두를 섰는데 어느새 방선생과 또 한대원이 선두를 차지했다. 9시경에 ABC 에 도착했다.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 1봉’ 그리고 그 연봉들, 엄청나게 큰 빙하가 압도한다. 어제 눈이 많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ABC 의 풍경을 만끽 할 수 있었다.  백두산님의 사진 촬영 후 11시 쯤 ABC 를 출발하여 MBC 에 12시에 도착 했다. 올라갈 때는 3시간 반이 걸렸는데 돌아올 때는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MBC 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2시 쯤 출발하여 데우랄리를 거쳐 히말라야 롯지에 5시 도착하여 숙소로 삼았다.

 

 ABC 산장 주인 제비 :

     90 년대 초반, 부산에서 노동자로 근무 하고 귀국하여 그 돈으로 이 산장을 구입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 별명이 자칭 제비라는데, 성실해 보이고 잘 생긴 젊은이였다. 한국말을 비교적 원활 하였으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어 롯지 곳곳에 한국 트레커들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메모와, 트레킹 메모, 사진, 명함 등을 남겨 놓았다. 대원 전체가 연명한 태극기도 보관되어 걸려 있다. 오늘 등반팀 3팀이 모두 한국 트레커였다

사상공단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일했다는 ABC 주인

     MBC 에서 데우랄리로 내려오는 길은 좌측은 마차프차레 연봉, 우측은 안나푸르나 남봉과 그 연봉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정말 아름다운 협곡이다. 눈녹은 물이 노도같이 흐른다. 어제 내린 눈까지 덤으로 붙어, 어제 안개 속에서 더듬지 못한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곳곳에서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데우랄리 인근에 도착하니 어제처럼 다시 안개가 짙어지다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안나푸르나 6일차

                                                                              

 

1,12.수요일

 

      고소증의 불안에서 해방된 우리는, 어제부터 약간의 술도 마시고, 밤에 물도 억지로 마실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할 수 있었다.  7시 40 분에 출발하여 도반, 밤부를 거쳐 시누와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누와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대장이 서둘렀다.   12시 40 분에 출발하여 촘롱을 지나치고 5시 10분쯤 지누단다에 도착하여 하루일정을 마치었다.   안나 푸르나 일정을 하루 일찍 마치고 랑탕 일정 전에 휴식을 더 가지려는 계획인 것 같다.   대원 중 일부는 지누단다에서 20분정도 메디콜라 변으로 내려가 있는 강변 노상온천에서 목욕을 했다

 

     히말라야 롯지에서 ‘밤부’까지는 하향코스라서 메디콜라 변을 따라 속도가 빨랐다.  밤부에서 급경사로 산능선으로 올라서며 고도를 높여 시누와의 정상에 이른다.   촘롱콜라 건너편에 같은높이에 올라올 때 묵었던 촘롱마을이 보인다.   산 아래로는 메디 콜라의 지류인 촘롱 콜라와 매디콜라가 합류하여 수량이 증대된다.  

  하산하여 촘롱콜라를 건넌 후 다시 고도를 높여 촘롱마을로 오른다.   시누와에서 촘롱까지는 경작지와 민가가 많이 산재해 있다.   특히 촘롱마을은 부촌으로 위성 안테나가 있는 가정과 롯지가 있으며, 국제 전화가 가능한 롯지도 있었다. 일부 대원들은 이곳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촘롱롯지를 지나 다시 급경사를 내려와 메디콜라 변에서 가까운 ‘지누단다’에 도착 해 숙소로 삼았다.

 

 마차프차레 정상의 배웅 :

 

     히말라야 롯지에서 밤부까지, 뒤를 돌아 볼 때마다 항상 마차푸차레의 정상이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고기 꼬리 같다는 마차푸차레 정상이 정겹게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밤부에서 오솔길이 오른 쪽으로 각도가 바뀌고 수림대가 형성되면서 마차푸차레 정상은 서서히 사라진다.   울창한 아열대 수림위에 은빛으로 빛나는 마차프차레의 위용은 정말 아름답다.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서 산중턱까지 회색구름이 짙게 깔리면서 마차푸차레는 시계에서 덮어져 버렸다.

하산길을 끝까지 배웅하던 마차프차레봉 정상

 

♧  하산하면서

     산을 내려 오며 보는 풍경은,  오르면서 보던 풍경보다 아름답다.    아마 한번 본 것을 각도를 바꾸어 다시 음미하는 풍취가 더해져서 일 것이다.   오르면서 간과한 것을 다시 수용하여 소화하는 여유와 폭이 생겨서 일 것이다.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은퇴 후의 나의 삶이 포기의 삶이되어서는 안된다.  여유와 폭을 가지고, 시각을 바꾸어 삶을 음미하고, 둘러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시절의 미숙함을 사랑으로 보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시누와’ 에서 하산하면서 :

     마을을 지나는데, 한 노인가 어디서 내려오느냐고 묻는다.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온다고 하니까 빙긋 웃는다. 안나푸르나 발치에서 물음으로는 엉뚱하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 신으로 부터 십계명을 받고, 신의 이름을 묻는다.

‘내려가서 우리 백성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알릴까요’.   신이 답했다. ‘나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신이니라’.  십계명 중의 한 계명에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고 있다.  신은 감히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힌두의 신들은 모두 이름과 역할이 있고, 그의 영역이 있다.  하물며 산의 이름에 이들 신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 신이 사는 산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감히 오르지 못하는..

 

     - ‘안나 푸르나,’ : 안나는 수확, 푸르나는 많다는 뜻. 풍요의 신.

     - 히운 촐리 : 히운은 우주 창조의 비스누 신, 촐리는 봉우리의 뜻.

     - 거네스 히말 : 거네스는 상업과 행운의 신

 

     식사를 하고 나니 밖에는 어둠이 깔렸다.   포터들이 부엌에서 작은북과 피리를 불면서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이들 음악의 리듬은 애잔하고 흥겹다.   우리 민속악보다 이해하기 쉽다.   참 흥겨운 민족이다 모이면 함께 노래하면서 춤춘다.

내일은 일찍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

 

산아래 마을 동구에 벌어진  갓 잡은 정육의 노점풍경

 

     오늘 많은 한국 트래커를 만났다.   숭실대학교 복학생이라는 남학생 두명, 다른 여학생 두명,    5~60세 정도의 여성 단체트래커 등 5 팀 정도를 만난것 같다.   일본인 트레커는 한명을 만났을 뿐이다. 그에게 물어 보니, 일본은 겨울 방학이 크리스마스부터 1월5일 5일 까지여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특히 남녀 대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히말라야 산을 오른다.   준비는 다소 미숙한 것 같아 보였다.   젊은이들의 해외여행이 단순한 여행에서 탐험과 모험의 여행으로 바뀌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여행비는 결코 국부의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제는 물의 흐름과 감은 것, 돈 몇푼을 금고에 더 넣어 놓는다고 부와 행복이 보장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국가의 구성원이 얼마나 생동감 있는 삶을 영위하느냐가 바로 국력의 바로메터라는 생각한다.   ‘젊은이의 건강한 여행은  최상의 투자다’

 

 

 노상 온천 :

     메디콜라 변에 있는 노상온천에서 일부대원들과 온천욕을 하러 갔다.   온천에 닿으니 곧 어둠이 짙게 깔렸다.   미리 내려와 목욕하고 있던 포터들이 우리가 오니 까르르 수선을 피우고 자리를 피해 준다.   온천은 위쪽, 아래쪽 두곳이 있다. 아래 온천 옆에는 프라스틱 파이프로 3줄기의 온천물을 흘려 샤워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여대원은 위쪽 온천을 사용하고, 남자는 아래 온천을 사용 했다.   더듬거려 바위 사이 틈새에서 옷을 벗고 몸을 담군다.   30도 정도의 온도에 40cm 정도의 깊이. 몸을 담구고 누우니 메디콜라의 강물소리가 커져 둘러보니 ,  빙하수 녹은 강물이  바로 손 닿는 곳에 흐르고 있다.   미스터 정이 냉탕도 하자며 농담을 한다.   메디콜라 강물에 몸을 식히자는 이야기 . 빙하수에 몸을 담글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중공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 어설퍼 보여, 자세히 보니 별이 아니라 시누와 쪽 높은 민가의 불빛이었다. 아! 축복 받은 나라 네팔이여. !.

 

 

 

안나 푸르나 7일차  

 

                                             

                                                                              1 월 13 일 목요일

     지누단다에서 새벽 5시에 출발했다.   어둠 속에 급경사를 내려와 메디콜라 변으로 내려간다.   . 랜턴이 없으면 위험했다.   내 랜턴은 포터 첸들러가 빌려가 한참을 가져오지 않아 그냥 앞사람의 불빛 만을 보며 걸었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첸들러가 헐레 벌덕 달려 올라 오더니 랜턴을 돌려 주고 다시 헐레 벌덕 달려 내려간다.   깜깜한 어둠 속으로..    그가 불안해 보여 다시 불러 세워 랜턴을 돌려 주며 날이 훤해 지면  달라고 했다.

함께한 여성 대원들

     뉴부리지에서 잠시 쉰 후, 메디콜라 주변의 민가와 경작지를 지나, ‘샤우리 바자르’를 거쳐 나야풀로 하산하니 12시 30 분이었다.   아침은 지누단다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로 뉴브리지 인근에서 때웠고,  10시 반경 샤울리 바쟈르에서 네팔차와 감자 두개를 간식으로 들어 점심은 먹지 않고 견딜 만했다

 

     뉴브리지에서,  상행로와 다른 코스, 메디콜라 계곡 하산코스를 택한 것이다.   메디콜라 계곡이 점차 넓어지면서 경작지들이 많아진다.   왼쪽 편으로 메디콜라 건너 고지대에 상행 트레킹시 지났던, 란드룩 등 마을이 아스라이 높게 보였다.  

‘지누단다’에서 내려와  메디콜라 강변을 어둠속에 걸으며, 포터들의 노래 소리에 나대로 우리 노래 ‘한오백년’을 읍조렸다.

 

     한 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님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년을 사자는데 엔 성화인가

      뒷동산 후원에 단을 모우고

    우리 부모님 만수 무강을 빌어나 보자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한 오백년을 산자는데 웬 성화인가 

 

      어둠. 포터들의 노랫소리, 별빛, 랜텀 빛 속에 한 발자국씩 밟아간다.   공연히 찡하며 울컥 흐느낌이 생겼다.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 어린 시절 생각, 그리고 이 즐거운 삶. 슬픔일리가 없는 그런 흐느낌이었다.   5 분정도를 숨죽여 훌쩍였다. ‘ 아 ! 이 삶의 기쁨이여 !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임종은 지키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어머님은 내가 김해에 근무 할 때인 1990 년에 돌아 가셨다.   일요일 저녁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형으로 부터 그날 새벽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황급히 차를 몰고 올라오는 그날 밤, 고속도에 웬 안개가 그렇게 짙게 끼었던지,   나는 그때 지금 같이 훌쩍이며 조심조심 밤새워 올라 왔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자주 이런 경험을 한다.

 

넓어진 협곡:   기후는 아열대로 바뀌었다.

     협곡의 폭이 넓어 지면서: 완만한 경사면에 펼쳐지는 민가와 경작지, 둔턱위의 수목들이 친숙하게 어울려 우리에게 인간의 삶이 느끼어 지는, 다시 인간의 품으로 돌아온 안도감을 심어 준다. 마치 ‘사운드 어브 뮤직’ 의 마지막 장면같은 풍광이 성취감과 자유와 희열을 느끼게 했다.

 

      나야풀은: 번화한 곳이다.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노점상 등 상가가 줄지어 서있고,  다소 어수선하고 부산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나귀 떼가 짐을 가득 싣고 좁은 다리를 채우며 건너기도 하고,  강변의  넓은 터에서는, 소를 잡아 분배하는 모습이 기름끼 빠진 우리의 창자를 유혹 했다.  늙은 티베트인이 매듭 장식을 팔아, 여자대원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나야풀 다리 위에서 마주친 당나귀.; 머리 장식이 인상적이다 .

     나야풀에서 전용 버스를 타고 오후 3시에 포카라의 짱 호텔에 도착하여 투숙했다.  저녁은 페와 호수변의 호사 스러운 야외 식당에서 양고기를 들었다.

마야풀 난민촌 모습

  돌의 나라 :

     밭 경계를 돌담으로 쌓기도 하고, 집의 벽을  돌벽돌로 쌓는다.   그 벽돌의 크기가 정교하게 규격화 되어 있다.   이 시골 마을에 어떻게 그렇게 정교한 돌집이 지어 질 수 있나 싶어, 챤들러에게 돌벽돌 만드는 법을 물었다.   나무로 벽돌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추어 망치로 모서리를 처 부셔 만든다고 한다,   하나 만드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10분이며 돌집을 지을 벽돌 1장을 깎아 낼 수 있다는데, 이런 풍경은 네팔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

 

 하산길에 뒤돌아 보면 :

     안나 푸르나 남봉과 히운촐리 가 뒤에 보였다. 상류에서는 그것이 마챠푸차레 였다.

 

 비스따리 비스따리 :

     트랙킹 내내 듣던 소리. 천천히 하라는 뜻으로 우리들의 빨리 빨리 만큼이나 즐겨 사용 했다.   장기 트레킹의 최대 비결은 바로 이 ‘비스따리 비스따리’ 였다.   현명한 가이드나 포터는 이 말을 많이 쓴다.   그들이 우리에게 '비스따리 비스따리' 할 때 우리는 그들에게 앞길을 내주며 그들에게 '치토, 치토(빨리 빨리)' 하며 복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