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르 나움(계속)
1 월 18 일 목요일
갈릴리 호숫가에서의 숙박은 포근했다. 어제 저녁 신부님 방에서 교우들과 마신 한 잔의 소주가 술에 약한 나에게는 좋은 수면제가 되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새벽까지 숙면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상큼한 주위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아직 모닝콜을 주기로 한 6 시 전이다. 집사람을 독려하여 다시 갈릴리 호수변 산책길을 나섰다. 이 새벽에 부지런을 떠는 사람은 우리 부부만 아니었다. 형님 부부도 파비아노 형제 부부도 정담을 나누며 호반을 산책하고 있었다.
아침 산책길에 조 신부님과 담소하는 형님 부부
오늘의 일정은 어제 미처 둘러보지 못한 예수님의 초기 공생활 활동 무대인 갈릴리아 지역의 다른 성지들 몇 곳을 순례하고 다시 이 호텔로 돌아오는 여유 있는 일정이다. 버스에 올라 호텔을 나서 호수를 옆에 끼고 달린다. 버스에서 현지 가이드인 벨라도 형제가 이런 말을 했다. 이스라엘 국화는 선인장이란다. 특징은 광야에서 자란다는 것과 건드리면 찌른다는 것. 농담인지 진담인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독기를 비유한 농담으로 들렸다.
▪ 5병 2어 기적성당 : 첫 방문 한 곳은 요한복음 6장 등 4 복음서 모두 에서 기술하고 있는 5병 2어의 기적을 기리는 성당. AD 4 세기 이전에 이미 건립 되어 있었는데 파괴 되었고. 현재의 성당은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대다수의 다른 성지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이 관리하고 있다고 가이드는 덧붙였다.
아름답게 꾸며진 제단 앞바닥에 5병 2어를 담백하게 묘사한 모자이크 타일이 눈길을 끈다.
5 餠 2 魚 기적성당
가이드 신 벨라도 형제로 부터 관련 성경 구절애 대한 설명을 듣다
제단 앞의, 5병 2어를 묘사한 모자이크 타일
▪ 베드로 수위권수여 기념 성당 : 다음에 방문한 곳은 아름다운 갈릴리 호수 변에 지어진 베드로 수위권수여 기념 성당. 이 성당은 요한복음 21장에 기술 된 것으로. 부활하진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 손수 음식을 마련해 주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고 3 번 물으시며 ‘내 양들을 돌보아라’ 라고 지시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예수님이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제자들을 기다리시며 음식을 마련하셨다는 그 바위일 것이라는 바위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수위권 수여를 묘사한 날렵한 동상이 있는 갈릴리아 호수와 연결되는 성당 정원은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제자들을 기다리신 바위
기념 성당 뜰의 조각상
갈릴리아 호수변의 베드로 수위권 수여 기념 성당 전경
▪ 주님 변모 기념성당 : 베드로 수위권 수여 성당에서 약 40분 달려서 있는, 타볼산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마태복음 17 장, 마르코복음 9 장, 루카 복음 9 장에 기술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의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성서에는 다만 높은 산으로만 묘사하고 있는데, 이 타볼산이 그 곳으로 지명 된 것은 아마, 이 산이 높이 약 600 미터의 이르는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시편 89 편 등에서 헤르몬산( 약 2,200m) 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는 신성한 산이기 때문 일 것이라고 한다.
타볼산 밑자락은 아랍 마을이 분포되어 있는 아랍인 주거 지역이고, 산 입구에서 부터는 정상 성당까지는 아랍인 운전수가 모는 봉고 같이 생긴 택시를 타고 오랐다. 성당 제단은 궁형의 석실 같은 디자인인데, 그 양벽면의 모자이크가 아름다웠다. 우리는 그 성당에서 오늘 매일 미사를 올렸다.
타볼산 밑자락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 간다. 산능선 위에 작게 주님변모 기념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주님 변모 기념성당
주님 변모 기념성당 내부
□ Tel Dan 과 Banias
오전 일정을 마치고 가파르나움으로 돌아와 점심을 한 후 헤르몬 산의 요르단 강의 수원인 Tel Dan 과 Banias 로 향했다. Tel Dan 은 이스라엘이 솔로몬 대왕 이후 남북으로 갈라진 후,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예루살렘 성전과 구별하여 이교적 성향이 강한 신전을 세운 곳이라고 한다. Tel Dan 의 관람은 숲이 우거지고 물이 용솟음쳐 흐르는 산길 - 전체적으로 건조성 토양에 익숙해 진 탓인지 신비로웠음 - 을 트래킹하는 일정이어서 마치 한국의 명산 계곡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곳이 요르단강의 제 1의 수원이라고 한다.
Tel Dan 의 제단터
Tel Dan 의 산길 트레킹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인근의 Banias 를 관람했다. Paneas 는 원래 바알예배처가 있던 곳으로 헬라인들이 숲과 양의 수호자인 판(Pan)신을 섬기는 곳으로 바꾸고 Paneas 라 불렀다고 한다.그 후 헤로데 대왕이 큰 헬레니즘 도시를 새우고 아우구스투스 신전을 건립하면서, 로마 아우수수투스를 기려 도시이름을 가이사리아로 불렀다. 그뒤 필립보가 이 지역을 다스리게 되자 지중해변의 가이사리아와 구분하여 '팔랍보의 가이사리아'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요르단 강의 제 2의 수원이 있고, 고대 도시 유물이 많이 파괴 된 형태로 남아 있고, 수원에 해당하는 곳에는 현재 회교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우리가 늦은 시간에 도착한 때문에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Banias 안에는 요르단 강의 다른 수원이 있다.
가이사리아 필립보 이름은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데, 예수께서 가이사리아 필립보로 가시는 길에 동행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어 보시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곳으로, 그리고 예수님께서 단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 곳으로 기록 되어있다.
□ 바산
다음은 성서에서는 ‘바산’ 이라고 기록된 헤르몬 산과 골란 고원의 시리아 접경 지역으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높은 고지이어서인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 휴게실 담에 붙어피해야 할 정도였는데, 멀리 유령화 된 마을, 군 레이다 기지, UN 평화 유지군 차량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어, 세계의 주요 분쟁지역의 하나인 이곳의 긴장감을 현장감 있게 느끼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 가이드인 ‘신 벨라도’ 는 유대교 근본주의자인 ‘닷디’에 대하여 설명했다. 거의 속말로 골통에 해당하는 이들은, 아랍과의 화해 정책에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아랍과의 화해를 추진하던 라빈총리의 암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때로는 엉뚱하게 현재의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뜻에 거슬리고 있다며, 이락크 등 아랍제국이 현 이스라엘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도 했다.
도로변의 구경꾼 ‘하이록’
이스라엘 농촌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대추야자, 올리브, 오렌지, 귤, 아보카도, 바나나 농장 등이 균형 있게 펼쳐 있는데, 골란고원 그 추운야지에서도 사과나무 묘목장이 있었다. 이스라엘 농촌의 선진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포도주 파티를 가졌다. 프란체스코 자매가 딸의 교사임용 시험 합격 소식에 한턱을 쏜 것.
1 월 19 일 금요일
아침 식사후 짐들을 꾸리어 버스에 싣고 Ein Gev Resort 를 떠났다. 호수변의 별장 같은 이 호텔에서의 숙식은 아마 일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오늘의 일정은 갈리리아 지역의 나머지 성소를 참배하고 해안 도로를 따라 예루살렘에 입성 하는 것.
□ 코라진
코라진의 유적들
첫 방문지는 <‘코라진’> : 예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시며 한탄 하신 곳. 코라진으로 향하는 길에 다소 특이한 모습의 쥐과 야생 동물들이 보였다. 이름은 ‘하이록’: 큰 토끼 크기의 Marmot 같이 생긴 이 동물들은 큰 바위 위에 마치 그 크기의 작은 돌을 얹어 놓은 듯이 떼 지어 웅크리고 앉아, 지나가는 우리 차를 호기심 있게 응시하고 있었다. 현지인 운전기사는 성서에도 저 동물의 이름이 나온다고 부언 했는데 믿거나 말거나...
코라진은 완만한 산등성 위의 폐허 도시, 예수님의 소돔과 고모라의 비유가 원인이 되었을까, 이 도시는 어쩌면 예수님 시대 직후 폐허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산등성이 위에 있어, 적의 내침을 쉽게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 고대 도시는 목욕탕, 정결 예식장, 공공시설 등의 석구조물 유물들을 현제도 발굴 중이라고 한다.
□ 가나
코라진에서 잠시 쉰 후 ‘가나’ 로 향했다. 가나는 현재는 인구 8천 명 정도의 작은 도시. 가나의 혼인잔치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곳은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이행 하신 곳.
가나의 결혼식 기적 기념 성당
우리는 이곳 기념 성당에서 원래의 스케줄에 따라 부부가 함께 온 교우들의 혼인 갱신식을 가졌다. 조학균 베드로 신부님의 주재로 이행된 혼인 갱신식은, 부부가 함께 오시지 못한 교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정말 축복을 받은 느낌이었다. 마음이 착하시고 신심이 굳은 형수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혼인 서약을 하셔서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신부님은 강론에서 이 가나에서의 혼인(갱신)식은 바로 예수님과 성모님이 하례객으로 참석 하셨던 그 결혼식의 재현이라고 의미를 부연하여 주었다.
기념 성당안에서의 혼인갱신 미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다
□ 나자렛
나자렛은 예수님이 성장 하신 곳. 예수님 시대 이전에는 역사적 의미가 별로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 이었는데, 초대 교회시절, 예루살렘 추방 후 유대인 기독교도들이 많이 이주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인구 약 10만 명 정도의 제법 큰 도시이며 기독교인과 아랍인들이 섞여 살고 있다고 한다.
나자렛 나자렛에는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를 예고한 사건을 기념하는 <성모 잉태고지 기념성당>과 성가정 성당이라고도 하는 <성요셉 성당> 이 있다.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의 잉태고지(영보) 기념성당
약간 희화적으로 처리된 천사가 성모께 잉태고지하는 모습의 조각상
성당 내부
성당내부 표석에 입맞춤으로 경의를 표하고
기념성당의 뜰, 한복을 입은 한국인 성모자상이 아름답다.
<성모 잉태고지 기념성당> 은 천사가 마리아께 예수님 잉태를 예고한 집 모형을 상징하는 고대 주택 유적지 위에 거대한 현대 건축물을 올려놓은 성당으로 그 성당 실내 중심에 위치한 고대 주택 유적지 앞에 제단과 좌석을 설치하여 미사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우리의 오늘 매일 미사는 이곳에서 올렸다.
성당 밖 담장식으로 설치한 벽면에는 세께 각국 천주교인들이 그들 특유의 모자이크 성모상을 전시하여 놓았는데, 우리나라는 색동옷을 입은 예수님을 우아한 한복의 성모님이 안고 계신 모습이다. 그리고 성당 마당 한 구석에는 요한 바오로 교황과 동방정교회 교황이 1964 년 화해하는 것을 상징하는 기념 동상이 외롭게 서 있었다.
<성 요셉 성당> 은 <성모 잉태고지 기념 성당> 바로 뒤에 붙어 있다. 교회의 지하 부분에는 요셉 성인의 목수 작업장으로 간주 되는 고대 유적이 보존되고 있으며 요섭 성인의 임종 모습 등을 묘사한 스테인 그라스 작품이 너무 아름다워 눈길을 끌었다. 형님과 형수님의 본명이 요셉과 마리아여서 이번 성지 순례는 물론, 이곳 나자렛 순례는 두 분에게 특히 뜻 깊은 행사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뿌듯했다.
성 요셉 성당의 스테인드 그라스: 성가족상과 성요셉의 죽음
본명이 요셉과 마리아인 형님부부의 성요셉 기념성당앞 기념사진
점심은 인근 제법 풍치 있는 식당에서 들었다. 이 순례단의 단 한분 비신자인 자매님께서 일행에게 포도주를 한턱내어서 점심 식사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 갈멜산
예언자 엘리아가 바알 사제들을 척살함을 묘사한 조각상
갈멜산에서 바라본 이즈래아 평원
나자렛에서 서쪽으로 지중해변까지는 성서에 나오는 이즈레 평야. 우리는 이 길을 달려 갈멜산에 도착 했다. 갈멜산은 해발 600~800m 로, 상당히 넓은 산자락을 갖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예언자 엘리아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여 승리하고, 그들을 처형 한 것을 기념하는 성역.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정치적으로는 강성하여 최대의 번성기를 누렸으나 이교 특히 바알신의 숭배를 용인하는 누를 범했는데 이를 앨리야가 강하게 징계한 것. 갈멜산의 하이파쪽 끝자락에는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전 하느님과 대면 고행하였다는 동굴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 일정에는 잡히지 않았다.
□ 가이사리아
갈멜산 참배를 마치고 해안을 따라 남하 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해안도시
<가이사리아 > 유적지. 가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이 지어 로마 황제 ’씨이저‘ 의 이름을 헌상한 도시.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총독이 주재하는 당시의 행정 도시로 당시 이스라엘 최대의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당시의 인구가 10만에 달하였다고 하는데, 예수님 수난 당시에도 원래 빌라도의 주둔지는, 이곳 가이사리아 였는데, 예수님의 재판 때는, 당시에는 과월절에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집결하는 것이어서, 소요 예방 차 예루살렘에 행차하여 있었던 것이라고 가이드 설명해 주었다.
로마 총독의 주둔지였던 가이사리아의 성곽과 해자
가이사리아 성곽의 황혼을 배경으로 한 형님 부부
당시의 성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튼튼하게 해자까지 둘러쳐진 성벽과 바닷가의 등대 등의 유물들이 볼만 했다. 성서적으로 이곳에서 베드로 사도가 로마의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를 이방인으로는 처음으로 세례를 준 곳으로, 그리고 사도 바오로가 2년 여 부제인 필립보와 함께 투옥되어 있던 곳으로 그 의미가 있다. 가이사리아를 떠날 때 오른편 지중해 수평선이 황혼으로 물들어 아름다웠다.
6. 예루살렘 순례
□ 통곡의 벽
텔아비브를 지나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어둠이 완전히 깔린 후였다. 우리는 다른 일정은 생략하고 오늘은 <통곡의 벽 >을 관람하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이곳 통곡의 벽은 AD 68 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 - 후에 황제에 오름- 이 3 년여를 끌어 온 유대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남긴 그 서쪽 벽을 말한는데, 후에 그 벽에 연결하여, 로마신전, 그리고 나중에는 아랍의 이슬람 신전등이 건설 되었다고 한다.
유대교 전통을 고수하는 "닷디"들의 괴팍한 모습
이곳 통곡의 벽에서는 검은 옷, 검은 모자를 쓴, 뒷머리는 높고 치켜 올려 깎고, 귀밑머리는 길게 아래로 치렁치렁 늘어뜨린 두발을 한, 다소 혐오스러운 복장과 용모의 ‘닷디’ -유대교 근본 중의자- 들이 벽에 머리를 대고 몸과 머리를 앞뒤 좌우로 흔들며 기도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들이 허물어진 성전에 대한 애도의 감성적인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지는데, 사실은 이 닷디들이 온몸을 앞뒤 좌우로 흔들며 기도 하는 것이, 우선 하느님 - 지성소 - 앞에서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또 온몸으로 기도드려야 한다는 율법을 실행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외지인들이 슬품을 표현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현지 가이드 신 벨라도가 설명해 주었다.
다소 괴팍스러운 이들 용모 중 모자로 그들 유대인들의 출신지 따위를 알 수 있다고도 하는데, 가운데가 뚫린 낮은 원통형 검은 모자를 쓴 이들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 들이며, 그 외에도 검은 맥고모자 또는 빵모자를 쓴 부류들이 있었다.
오늘은 안식일이라 여기애서는 사진은 전혀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사진기 휴대 여부는 입구에서부터 체크하고 있었다. 이런 재미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해 아쉬웠다.
통곡의 벽에는 남성 구간과 여성 구간이 따로 있는데,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하는데 모자는 통곡의 벽 구내로 들어 갈 때 입구에서 빌려 쓸 수 있다. 형과 나는 들어가 그 왼쪽 옆에 있는 실내까지도 들어가 보았는데, 분위기가 다소 어색했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그 곳은 유대교 관련 직책이 있는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 고통의 길( via Dolorosa ) 과 성묘성당
1 월 20 일 토요일
예수님의 고통의 길에서 십자가의 길 행사를 하는 일행
오늘 오전의 일정은 고통의 길(via Dolorosa) 순례길. 가이드는 일상 시간일 경우 좁은 골목길인 그 길이 이만 저만 번잡한 것이 아니라며 새벽녘에 나서자고 해서 새벽 5시 40 분에 호텔을 나와 도보로 다마스커스 게이트 쪽으로 이동 했다.
□ 성묘 성당과 십자가의 길 순례
호텔에서 <다마스커스 게이트>로 가는 중간에 Garden Tomb 푯말이 보인다. 가이드는 성경 구절에 예수님이 정원에 묻혔다는 구절이 있다 하여 개신교에서는 예수님 무덤으로 믿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카톨릭 성당인 성묘 성당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다마스커스 게이트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다마스커스 게이트> 는 예루살렘 성의 11 개 성문 중 의 하나인 아름다운 문으로 다마스커스로 통하는 옛 도로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다마스커스 게이트>를 지나면 바로 상가들이 들어 찬 넓지 않은 도로이고, 조금 걷다 보면 서울 구 도심의 골목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좁은, ‘십자가의 길’ 의 원류인, 고통의 길 -Via Dolorosa - 에 들어선다.
성묘(에수님의 묘) 성당 앞에서 "십자가의 길" 경배를 마무리하는 일행
성묘 성당안 표석에 경배하는 모습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하는 제1처는 당시 총독의 법정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으로부터 시작한다. 제 1 처에서 제 9 처까지는 Via Dolorosa 상에 있고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시는 것을 묵상하는 제 10처는 성묘성당 외부 마당에 있다. 제 11 처부터는 성묘성당 내부로, 각 교파가 합동 참배하는 좁은 공간이다. 특히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묻히심을 묵상하는 제 14처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묘소 구역은 6개 종파, 즉 카톨릭, 그리스 정교, 곱트교, 시리아 정교, 아르메니아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들이 분할 관리하고 있는데, 그리스 정교가 가장 넓게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의 죽음믈 묘사한 성묘 성당 안 벽화
지터 위에 세운 신전으로 무덤 성전이 동시에 부활의 성전인 것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인다. 우리는 이 성스러운 옛 골고다 언덕에서 - 지금은 실제로 주택들이 들어 선 좁은 골목길 - 십자가의 길 경배를 드리고 성묘성당 카톨릭 성당에서 오늘의 매일 미사를 올렸다.
성묘 성당안에서 미사를 갖는 순례단 일행
지하 동굴 형 회랑을 돌아 나오면 돌로 쪼아 만든 물 저장탱크로 보이는 지하 공간이 있고, 이곳에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황후의 명령에 의해, 예수님이 박히셨던 곳으로 간주 되는 십자가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 올리브 산
성묘성당을 나와 올리브 산 순례 길에 올랐다. 올리브산은 예루살렘 동쪽 키드론 골자기 건너편에 있는 예루살렘 시가지(해발 720m) 보다, 약 100 m 높은 작은 산. 이 산에 올리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의 발자취가 깊게 남겨진 곳으로, 예수님은 이곳에서 자주 목상과 기도를 하셨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셨으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바로 그곳. 비잔틴 시대에서부터 많은 성전이 있었다고 한다.
올리브 산의 예수님 승천 기념 성당 내외부
▪ <예수 승천 소경당> 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경당으로, 자료들에는 승천하신 곳의 바닥돌에 예수님의 발자국이 선명하다고 하는데, 다듬은 돌로 장방형으로 좁게 둘레를 처 놓은 것이 마치 수돗가 빨래터 모양으로 보여 안쓰러웠다. 이 교회가 처음 세워 진 것은 기원 후 380 년경. 그 후 파손 된 것을 십자군 때에 이곳에 8 각형의 작은 경당을 다시 지었는데, 당시는 예수님의 승천을 상징하여 천장을 만들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후 무스림들이 이 경당에 둥근 지붕을 씌우고 이곳을 그들의 사원으로 만들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무슬림도 예수님을 예언자의 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유적을 훼손시키지는 않았지만 허술한 관리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
▪ <주님의 기도 성당> 은 예수승천 소 경당에서 남쪽으로 100 미터 거리에 있다. 루카복음 11 장에 기술되어 있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을 기념하여 건축된 성당. 라틴어 명으로는 Pater Noster(빠떼르 노스떼르) 성당이라고 하는데 ‘우리 아버지’ 라는 뜻.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바위(?)
이곳의 의미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준 것 뿐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하느님을 지엄하고 두려워하여야 하는 존재가 아닌, 자상한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허용하신 것에 주요한 의미가 있다고, 조 신부님이 덧 붙이셨다. 이 성당 지하에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바위라는 것이 보존 되어 있고 밖에는 회랑 벽면을 따라, 한국을 포함한 62개국 언어로, 각국의 교회가 마련한 ‘주의 기도’ 가 그려져 있다. 한글 주의 기도는 부산교구에서 마련한 것이었다.
세계 각국어로 기록된 주기도문. 한글 주기도문이 보인다.
이곳에는 당초 AD 4 세 콘스탄틴 대제가 이곳에 기념교회를 세웠었으나, 페르시아인에 의해 파괴되고,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다시 이슬람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19 세기에 프랑스 공주가 주도하여 재 건립 중 프랑스 대혁명 발생으로 중단 되었던 것을, 다시 프랑스 갈멜 수녀원이 완성하는 파란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갈멜 수녀원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멸먕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신 것을 기념한 성당
건물 꼭대기 네 귀퉁이 장식은 눈물 단지
예루살렘 성을 배경으로 형님과
▪ 눈물 성당(Dominus Previt)>은 마태복음 23 장에 기술 된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파괴를 예언하시며 눈물을 흘리신 것을 기념하여 건립된 성당이다. 이 성당은 이탈리아 건축설계가가 설계하여, 1955 년 건축 한 것으로 지붕을 눈물처럼 장식한 외양이 돋보이며, 실내의 제단 배면은 아치형 유리로 처리하여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제대 앞면에 날개를 펴고 알을 품은 암탉 문장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상징한 것인가.
이 성당입지는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 - 현재의 예루살렘성은 16 세기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1세가 확장 개축한 것으로 한면 1 km 정도의 방형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 과 유적들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인데, 또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의 황금문을 입성하시는 경로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 나뭇가지를 꺾어 흔들며 호산나를 불렀었을 그 곳.
The Church of Nations : 20 세기 초 16개국 기독교인의 성금으로 설립된 게세마니동산의 교회
▪ 다음에 방문 한 곳은 <게쎄마니 동산>. 게쎄마니 동산은 예수님이 대사제의 종들에게 잡히시기 전에 고통스럽게 기도 하시던 곳. 이곳 예수님이 울며 기도하시던 바위 위에 기념 대성전이 있는데, 처음에는 AD 4세기말 데오도시우스 황제 시대에 신축 되었다가 이교도의 침입과 지진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20 세기 초 16 개국의 기독인들의 성금으로 재 건립 된 것으로, 그 이유로 이 성전을 따로 The Church of Nations 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일행들은 그 바위에 입 맞추는 의식을 가졌다.
게세마니 교회에 있는 올리브나무 고목: 어쩌면 고통의 기도를 올리시는 예수님을 목격하였을 수도?
□ 시온산
‘시온’이란 ‘산등성이’ 혹은 ‘요새’ 즉 성벽으로 둘러싸인 언덕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며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는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는데 16 세기 중엽 성을 개축할 때 성 밖으로 제외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최후의 만찬 경당’, ‘베드로 회개기념성당’, ‘마리아 영면 기념성당’을 참배 했다.
▪ <최후의 만찬 경당>자리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유월절 만찬을 드신 다락방,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도중에 강림하긴 곳으로, 이를 기념하여, 십자군 시대 기념 성당을 지었으나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1948 년 이스라엘 정부가 접수하여 유대인들이 학교 등이 운영하면서 2 층의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을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1층에는 세족례성당과 사도도마 기념 성당이 있다고 하는데 참배하지는 못했다.
▪ <성모님 영면 성당> 는 성모님이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신 곳이라고 한다. 이미 초기 교회시절에 기념 성전이 있었고, 수차례의 건축과 파괴를 거쳐 현재의 성당은 20세기 초 지어진 것으로 독일 분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성모님 영면 시 전 제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였으나 당시 전도 여행 중이던 사도 도마는 참석 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도마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해야겠다며 관을 열었을 때, 시신은 없고 장미꽃 한 송이가 있었다는 전승이 있다고 한다. 이 전승은 아마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 하고자 했던 도마의 Personality 와 순결한 성모님의 이미지에 맞춘 이야기로 생각되는데, 이 성당 지하홀 중앙에는 주무시는 성모상 조각이 모셔져 있는데, 그 안면과 손등은 상아로 처리되어 있다.
이 성당은 1 차 대전 이전에 독일과 동맹을 맺은 터키 황제가 독일 황제에게 친선의 의미로 선물로 관리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대사제 가야퍄의 집터에서 고통의 기도를 는 예수님 상.
대 사제 가야파의 집터에 세워진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안에서
▪ <베드로 회개 기념성당> 은 당시 대사제 가야파의 집터로 추정되는 유적위에 세워진 성당으로, 베드로 사도가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3 번 부인하고 이를 후회하며 통곡한 사건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예수님이 갖히셨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하감옥에서의 묵상
유적을 발굴 하고 이를 훼손 하지 않고 그 위에 성당을 짓는 것은 이곳 순례대상 성당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한데, 이 성당의 지하에는 다른 유물과 함게 예수님이 갇혀 있으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을 깎아 만든 지하 감옥이 보존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 지하 감옥에 쭈그려 앉아 불을 끄고, 그 감옥에서 하루를 보내셨을 예수님의 고통을 묵상하였다.
□ 쿰란: Qumran
시온산 순례를 마치고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사해 북서 해변에 있는 ‘쿰란’ 을 방문했다. 쿰란은 그 유명한 ‘사해문서’ 가 발견(1947년) 된 곳이다. 당시 베드윈 목동에 의해 발견된 이곳 11 개 동굴 안에서, 흙항아리 안에 저장된 거의 모든 구약 성전을 포함하는 성서의 필사본과, 이곳에 거주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의 생활기록들이 발견 되었다.
에세네파 사람들은 유대교 사제계급들로, 이스라엘이 그리스 정복시대에서 로마 정복시대로 바뀌는 과정에서, 하스모니아 왕조가 망하고 ‘요나단’이 로마의 후원으로 집권하면서 사제 계급의 권리를 박탈하는 조치를 취한 것에 반발하여, 집단으로 이곳으로 이주하여 금욕적 수도생활을 해온 메시아의 내림 -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을 기다리던 집단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노동과 성서필사, 공동체 생활 등 금욕적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기원 70 년경 로마의 침공 소식을 듣고- 유대전쟁을 말하는 듯- 문서들을 토기 항아리에 넣고 11 개 동굴에 보관하고 피신하였다고 한다.
이곳 기념관에서는 당시 에세네파 사람들의 생활상을 주제로 한 약 5분 분량의 영상을 관람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유적들은 곳곳에 먼 거리로 보이는 동굴들과, 주거지, 주거지의 수로, 물 저장고 등이고, 생활유물들도 전시 되어 있다.
사해 문서는 대개의 유물들이 그렇듯이, 초기에 유출되어 베들레헴의 아랍 골동품상에 넘어 간 것을, 저명한 고고학자인 이스라엘군 사령관의 부친이 밀잠입하여 확인을 한 후, 이스라엘 군의 기습으로 다시 찾아 왔다고, 첩보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가이드가 해 주었다.
쿰란 유적지
쿰란 관람을 마치니 주위가 어두워졌다. 우리 일행은 인근의 사해 해변에 도착하여 어둠 속에서, 동심으로 돌아가 사해에 발을 담그고 놀다 유대광야를 달려 숙소인 예루살렘의 Grand Court 호텔로 돌아왔다.
7. 베들레헴 순례
1 월 21 일 일요일
오늘의 일정은 베들레헴 순례 후 남쪽으로 달려, 에집트 국경을 통과하여 시나이 산으로 이동하는 것,
우리는 아침 일찍 7 시에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8 km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탄생지이기도 하고, 다윗왕의 고향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그 진입 초입부터 그렇게 상상하듯 평화로운 곳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베들레헴에는 팔레스타인 정착촌이 있어, 유대인 지역과 구별하는 콘크리트 장막이 높게 가시철망을 머리에 인체 길을 따라 나란히 달리고 있고, 입구에서부터 낙서들이 휘갈겨 있는 모습이 마치 뉴욕의 흑인 거주 지역의 것을 방불하게 했는데 뉴욕과 다른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팔레스타인들의 피 매친 절규 일 것이다.
▪ <예수님 탄생 대성당>은 파란 많은 역사를 갖는다. 2세기 로마의 하이드리아누스 황제가 제2차 유대 반란 진압 후 예수님 탄생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구축하였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이곳을 순례 후, 황제에게 청원하여 아도니스 신전을 철거하고 예수님 탄생 성전을 건축 하였던 것으로, 6세기에 사마리아 인들의 반란으로 일부 손상을 입었다가 유스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복원 되었었다.
7 세기에는 페르샤인들의 침공이 있었으나, 다른 성당들은 수난을 받은데 비하여 유스티아누스황제가 복원한 이 성전은 크게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데, 이는 성당 천장화의 동방 박사 중 페르샤 의상을 입은 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십자군 때에 이 성전을 보수하면서 출입문 높이를 1.2 m 정도로 낮추고 그 폭도 좁게 만들었는데, 이는 어느 누구도 머리를 숙이고 이 성전을 출입하게 하여 자기를 낮추고 예수님 탄생 성전을 참배하게 하려는 의도 였다고.
예수탄생 기념성당 내부 모습
예수님 탄생 기념 표석에서의 경배
예수님 탄생 성전 밑에 예수님 탄생 동굴이 있는데, 여기에 1717 년 카톨릭 교회가 설치한 은으로 만든 예수님 탄생 장소를 표시하는 별모양이 바닥에 장식되어 있고, 그 장소 옆에는 여물통과 성가족의 휴식 장소인 구유동굴이 있다. 현재 이 성당은 동방정교 소속 교회로 되어 있으며 우리가 참배 하는 중에도 1층 대성당에서는 동방정교회의 예배 의식이 진행 되고 있었다.
예수님 탄생 대성전의 옆에 카톨릭 교회 소속인 <성까뜨리나 성당> 이 있다.
이 성당은 1881 년 프란체스코 수도자들이 세웠는데, 이 성당 지하에도 탄생 동굴과 구유동굴 같은 동굴들이 있는데 이곳에서 4세기 예로니모 성인이 34 년을 칩거 수도하면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 불가타 성경 - 하였던 곳으로 예로니모 성인은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성 까뜨리나 성당에서 집전한 미사
성 까뜨리나 성당 내부
이곳 성당은 은 예루살렘 주제 카톨릭 대주교가 크리스마스 자정미사를 집전하는 곳으로, 이는 예수님 탄생 성전이 동방 정교 소속이기 때문에 피치 못한 사정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곳 지하 성전에서 오늘이 매일 미사를 올렸다. 조신부님은 이곳은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신 현장으로, 오늘의 미사를 성탄미사로 올리신다며, 이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오늘 태어나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론하셨다. 카톨릭 교회는 성묘성당과 주기도문 성당 그리고 이 성 까뜨리나 성당을 3대 성당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성 까뜨리나 성당을 나와 차를 타고 베들레헴을 떠날 때, 왼쪽 먼 언덕위에 빽빽이 들어선 흰색 건물들이, 마침 비가 개이면서 비추기 시작한 밝은 햇빛을 받아 고대 도시의 그것처럼 신비스럽고 정갈했다.
베들레햄 시가지에서 집사람과 조학균 신부님
베들레헴을 참배 후 원래의 계획은 유대 전쟁 시의 그 유명한 ‘마사다’ 요새를 관람할 예정이었으나, 어제 밤의 폭우로 길로 사용되는 와디( 마른 강 )이 끊겨 접근도 하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아쉬움이 들었다. 마사다에 대하여 가이드는 유대 전쟁사를 쓴 ‘요세프스 프라비아누스’ 가 마사다 항쟁을 다소 과장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고 하며, 우리들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였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인들의 성지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훈련의 마지막 과정으로 마사다에 올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고 외친다고 한다. 400 년 사이에 2번이나 일본에게 처참하게 당한 우리들은 어디에 올라 “ 다시는 되풀이 시키지 않겠다” 고 외쳐야 할까.
우리는 사해를 왼쪽으로 두고 남하 했다. 도중에 ‘헤브론’ 과 ‘브엘세바’ 로 향하는 도로 표지판들이 보였는데, 우리는 일정상 이곳들은 들르지 않는데 헤브론은 성서에서 아브라함이 그 가족들을 위한 무덤 터로 산 곳이며, 그래서 ‘족장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아브라함, 사라, 이삭, 레베카, 레아 그리고 야곱을 찬양하기 위한 거대한 성전이 그 무덤 동굴위에 세워져 있어, 유대인과 이스람의 기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브엘세바 역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던 곳.
점심은 사해가 내려 보이는 삭막한 언덕 위에서 가이드가 마련한 한국식 도시락으로 먹었다. 인근에 ‘Stone of Lot's Wife' 라는 푯말과 그럴듯한 바위가 보였는데 신빙성이 가지는 않았다.
사해변의 화학 공장
사해 변에는 사해의 바닷물을 원료로 한 화학 공단이 조성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학제품들은 그 질이 뛰어나, 세계적인 명성을 갖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대 자동차에서도 이곳 공단에서 전해질 원료를 수입한다고 가이드가 덧붙였다.
Taba 국경은 이스라엘의 최남부, 이스라엘, 요르단, 에집트 3국이 국경을 접하는 꼭짓점 부분에 있다. 우리가 도착 했을 때 이스라엘 국경 쪽에서 국경 통과 짐 중에 수상한 것이 있다며, 이를 조사하는 이유로 1 시간 넘게 기다리게 하더니, 이스라엘 영역을 넘어 이집트 국경에서도 또 짐 검사를 까다롭게 하며 시간을 끌어 오후 6 시가 넘어서야 겨우 국경을 통과하여, 어둠이 깔리는 홍해 바닷가 시원한 야경을 즐길며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아마 태권도 교관으로 파견 나와 정착한 것이 아닐까 싶은, 젊고 너무 융통성이 넘치고 활력이 있어, 초면에는 쉽게 신뢰감이 가져지지 않는 그런 젊은이였다. 그를 따라 어둠속에 시나이 반도를 달려 시나이산 밑 호텔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호텔 Morgen Land Village 는 레조트 시설 같은데 제법 그럴 듯한 외형에 비하여, 침실은 냄새가 나고, 타월들도 깨끗해 보이지 않아, 꺼림직 하여 목욕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일은 새벽 2 시에 기상하여 시나이 산을 오를 일정이라서 씻지도 않고 그냥 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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