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한 동지중해 크루즈 여행기 (1)
< 출 발 >
2017 년 9 월, 우리는 로마에서 아테네를 왕복하는 동지중해 크루이즈 여행을 했다. 집사람은 우리의 결혼 40 주년 기념 이벤트를 가져야 한다는 명분과, 외국에서 고생하는 아들 내외도 격려해 주어야 한다며, 평소라면 엄두도 못낼, 아들가족과의 이 거창한(?) 여행 계획을 추진하였다.
우선 다섯명 가족의 여행 비용도 만만하지 않을 것이지만, 처음 부닥치는 문제는 맞벌이 딸을 위해 외손녀를 돌보아 주고 있는 집사람이 여행 일정을 뽑아 내는 것이었다. 마침, 2017 년 추석에 아이들이 징검다리 휴가를 쓸 수 있을 경우, 10 여일의 여행일수를 빼낼 수 있는 것을 파악한 집사람이, 딸 내외와의 어려운 협상(?)을 거쳐, 추석 연휴 전후로 2 주간을 확보한 것이 거의 1 년 전인 작년 10 월의 일이다. 미국 대학에서 연구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들도 주임교수의 양해를 얻을 수 있었다.
집사람이 길을 다 깔아 놓고 나니, 미심쩍어하던 나도 참 멋있는 여행이다 싶어졌다. 로마에서 아테네 까지, 신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귀에 익은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호화 크루즈 선을 타고 왕복하는 선상 여행이라...,, !
마치 그리스 신화속의 영웅들을 찾아가는 환상의 여행이지 않는가 . 그것도 믿음직한 자식들과 함께..
< 베네치아>
2017. 9 월 27 일 수요일
경유공항인 파리로 향하는 Air France 출발 시간이 새벽이어서 우리는 인천 공항내 Capsule Hotel 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어제 저녁 집을 나섰었다. 새벽에 분당에서 인천 공항까지 여행 가방을 끌며 이동하는 번거러움을 피하여, 마치 비행기 내부같은, 금속성 좁은 공간이었지만 --실제는 capsule 이라기 보다는 제법 쓸모 있는 공간이었다 - 포근한 침대에서 안락한 하루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공동시설이었지만 화장실이나 샤워도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었다.
8시에 공항을 출항한 비행기는 파리까지 11시간, 파리에서 환승하여 다시 2시간 날아 베네치아 '마르코폴로' 공항에 도착했다. 크루즈선 탑승은 로마항인데 베네치아로 중간 기착을 잡은 것은 관광 성수기인 추석연휴여서 항공편 예약에 혼선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베네치아 관광을 추가해도 괜찮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아들가족을 만나 2 박하고 기차 편으로 로마로 이동하여 쿠르즈선을 타기로 하였다.
공항에서 수상 버스타고 F.te Novo 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민박집이 Google 지도상에 표시된 곳과 달라, 자기들도 헤매었기에 걱정이 되어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오랫만에 만나는 손녀 아이를 보듬어 안고, 그물망 같은 골목과 운하를 건너 안내하는 아들 부부를, 한번 온 길을 참 잘도 찾아가는구나 감탄하며 따르면서, 아이들 덕에 이 여행 참 편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예약한 민박집은 그 복잡한 골목길 안에 있는 연립형의 주택 독채였다. 100 년 묵은 건물이라고 한다. 방이 5 개이고 거실도 넓은 훌륭한 숙소였다. 마치 안국동 북촌 기와집을 독채 빌린 것 같다고 황홀해 하며, 간단히 저녁을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9 월 28 일 목요일
아침 일찍 깨어, 어제 보았던 거미줄망 같던 운하와 골목 풍경들이 아른 거려, 소위 탐색을 한다며 새벽 산책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었다. 골목을 몇번 돌다보니 그길이 그길 같아 도대체 돌아갈 길을 가늠할 수 없었다. 치매 노인네 길 잃는 꼴이 바로 이것이다 싶은 암담한 경험을 한 후, 눈에 띄는 큰 성당 앞 계단에 주져앉아, 카톡으로 아들을 불러 겨우 '가출 치매노인' 신세릏 면할 수 있었다. (ㅠ..ㅜ)
오늘 하루 베네치아 관광을 할 수 있는날이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와 수상버스타고 성마리아성당 - 13.4세기 페스트 완치후 봉헌된 성당이라함 - 선착장에 내려 그곳으로 부터 도보로 성 마르코 성당, 리알토 다리를 섭렵하여 숙소로 돌아 왔다.
잠시 휴식 후 다시 수상버스로 부라노 섬으로 이동했다. 베네치아 동쪽의 평화로운 작은 섬이다. 섬마을 내부와 공원을 산책하다 집사람이 눈짐작으로 맛있어 보인다는 노천식당에서 오징어 튀김요리로 점심을 들었다.
한적한 섬마을을 아들 며느리 손녀와 함께 산책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섬보다 나의 마음이 더 아름답고 평화로웠으리라.
숙소로 돌아와 못다한 정을 나누고, 저녁 요기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새벽 같이 수상버스로 기차역으로 이동하여 로마행 특급열차를 타야한다.
9 월 29 일 금요일
새벽 3 시부터 부산을 떨었다. 6 시 6 분 로마행 기차를 타기위해서, 잠자는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4 개의 큰 여행가방을 끌고, 자갈돌 블럭이 깔린 골목길을 덜커덕 거리며 1km 정도 걸어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이동 하는 여정이다. 다행이 모든 것이 순조로워 시간에 마추어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새벽 특급열차여서인지 출발 시 좌석이 텅텅비어, 우리는, 무심코, 많은 짐을 복도에 쌓아 놓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었다. 로마역에는 오전 9시30분 도착 예정이다. 그러나 로마 인근 2 개역에만 정차한다는 그 역에서 - 아마 출퇴근 승객이리라 - 객실이 승객으로 가득 메워져 통로를 막고 있는 짐때문에 안절부절 해야 했다.
종착역 Roma Termini 에서 다시 로마의 해양 관문인 '치비타베키아 '항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치비타베키아 역에서. 마을 셔틀 버스를 타고 항구 입구에 도착하니 크루즈 선사 전용 셔틀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뻐근한 전 일정을 모두 마치고, 산덩이 같이 거대한 크루즈선 옆을 걸어 승선 포인트로 향하며, 아 ! 드디어 이 여행에 제대로 발을 들여 놓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미리 긴장이 풀렸다.
승선 후 14 층 식당 - 오션 뷰라고 칭하며, 항해기간 승객의 매끼식당이다. 밖으로 나오면 높은 위치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마음이 탁 트인다. 식단도 어느 호텔에 못지 않은 부페식이다, - 점심을 먹고, 객실을 배정 받아 짐을 풀고 나니 바로 비상 대피 훈련을 실시한다. 그럴테지 ^-^.
저녁 식사 후 선박 내부를 둘러 보았다. 4 층 상가 층에는 레스토랑, 카지노, 명품점, 극장, 칵테일 바, 댄스홀 등 편의 시설들이 모여 있었다. 승선 하자마자 만면에 즐거움을 띄우며 음악에 마추어 쌍쌍이 돌아가는, 다른 문화권의 늙은이들이 부러웠다..
의외로 승객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실망했다. 우리 부부는 차라리 영계급.. 몸스타일이 거의 망가진 백인 노인네들이 주종을 이룬다. --- 그래도 우리는 즐겁게 여행을 할 것이다. 사랑 하는 아들, 며누리, 손녀와 함께..
<시칠리 메시나 항>
9 월 30 일 토요일
밤잠을 많이 설쳤다. 어제 커피를 많이 마신 탓인가. 한참을 잔 것 같은데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런 잠이다. 우리 객실은 사방이 밀폐된 방이어서 답답하다. 스마트폰도 제대로 작동 되지 않는 것 같았다. 3 시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웠다. 7시였다 . 아들이다. 지금 배가 화산섬을 지나고 있으니 올라와 함께 보잔다. 아이들 방은 어린 손녀 때문에 창문이 있는 선측의 선실을 별도로 예약했었다.
아이들 객실에 머물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10 시에 메시나 항에서 내려 시내 관광을 했다. 메시나 항은 천혜의 항구로 보인다. 크루즈 선의 14층 갑판에서 바라본 항구와 도시는 참 아름 다웠다. 배에서 내리자 장사군들과 택시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귀찮다.
어린 시절 미국 영화가 보여주던 가난하고, 전쟁에 찌든 나라 이탈리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두오모 성당
메시나 시내 관광은 관광 트롤리를 이용했다 . 1 시간 시내 일주에 1인당 10 유로이다. 트롤리 관광을 마치고, 크루즈 선착장 가까이 있는 노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필수 관광 포인트라는 정오의 두오모 성당 타종 행사를 기다렸다.
정오가 되니, 성당 종탑의 종이 울리며 종탑 윗층에서부터 사자.숫닭. 성모 마리아 조형들이 차례로 태엽 장난감 같이 작동하며 연출을 한다 . 사자가 상체를 몇번솟구치며 포효를 한 뒤, 아랫층의 숫닭이 활개를 치며 세번 울고, 다음은 또 한층 아랫층에서 '아베 마리아' 성가에 마추어 요한을 선두로 12 제자들이 마리아 상을 돌며 경배를 드린다. 마리아상은 손을 들어 이에 답례를 하고... 사자는 마르코 복음을, 숫닭의 3 번 울음은 예수 처형 전일 숫닭이 세번 우는 사이 베드로가 예수를 3 번 부인한다는 성경 귀절을 표현하는 것이다. 어느 때 만든 작품인지 재미 있는 발상이다. 배로 돌아와 점심을 하고 아이들은 수영을 하겠다고해서 집사람과 나는 객실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저녁은 상가층 레스토랑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다.. 레스토랑 만찬은 크루즈 기간 두번 무료로 사용권을 주는 정식 만찬이다. 매일 먹는 부페 음식과 다른 별식이다. 포도주 주문하면 별도로 비용으로 지불하여야 한다.
식사 후 집사람과 며느리는 장난삼아 스로트 머신을 하고. - 몇분 안에 준비했던 40 달라를 다 날렸단다 - 나는 아들과 잠든 손녀의 유모차를 밀며 각층의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휴계실 Hideaway 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10 시쯤 객실로 돌아 왔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행복감을 느꼈다. 한창 젊은 나이의 총기로 , 아빠와 함께 했던, 나는 까맣게 잊었던, 옛일을 상기 시켜줄 때, 내 삶이 그런 무늬로 짜여져 있기도 했던가 놀라며 포만감을 느끼고는 했다.
< 몰타, 베라타 항>
10 월 1 일 일요일
이제 겨우 시차적응이 되었나 보다. 어제 11시 경에 자리에 들었는데 4 시반경 한번 깨었다. 내가 부스럭 거리는 통에 집사람도 깨어, 둘 다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누워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며 시간을 죽였다.
6 시 못미처 객실을 나와 14 층을 갑판을 거닐었다, 아직 준비가 덜된 식당에서 이른 식사를 하며 밝아 오는 바다풍경을 즐겼다. 오늘 기항지는 몰타 섬의 수도 '베라타' 항이다.
몰타섬 베레타항 전경
성 요한 대성당
몰타는 천혜의 휴양지이라고 한다. 영어가 공용어 중의 하나이고, 거지가 없는 깔끔한 나라라고 했다.
8 시에 하선 했다. 전 해안이 절벽과 성벽으로 둘러쳐진 베라타 항은 천혜의 요새로도 보인다. 도시 중심지역은 해변 도로에서 한사람당 1 유로를 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공원. 동상과 조경수들로 가꾸어진 공원은 관광 포인트라지만 평범했고, 오히려 중세풍 시가지가 마음을 더 끌었다.
제일의 관광 포인트 라는 '성요한 대성당' 은 오늘은 주일이라 관광객에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카톨릭 신자, 미사를 참석하겠다는데야 ... ㅎㅎ. 발레타 성곽 도시가 성요한 기사단에의해 건립되었다고 하니 성요한 대성당은 이곳의 정신적 지주였으리라.
9 시 15분에 시작하는 미사에 겨우 맞추어 도착했다. 황금빛의 제대와 벽면의 조각, 문양들, 그리고 궁형 천장화들이 화려하다, 그 웅장하고 화려함에 비해, 미사 참배 신도는 백명에도 채 못미치고 그나마 노인네들 뿐이었다. 참배 인원이 적은데 비해 집전하는 제단 위의 신부는 여섯분, 성가대석도 가득 채워져 있어 의아했다.
1 시간 여의 지루한 미사 참례 후 기념 사진도 찍지도 못 하고 나왔다. 밖에 나오니 악단과 목각 인형을 앉힌 가마를 멘 예북차림의 행열이 관광객을 이끌며 도로를 행진하고 있었다. 옆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 아마 관광객인 듯,- 무슨 독립 기념일 같은 것 같다고 하고, 그 옆의 사람은 오늘이 성 어거스틴 축일이라고 바로 알려준다.
정오에 성벽 위에서 예포 쏘는 것을 관람하고, 며느리는 손녀 수영 시켜야겠다고 배로 돌아가고, 아들과 함께 시내를 더 걷다 골목의 노천식당에서 몰타의 전통식품이라는 홍합요리를 애피타이져로, 문어 스튜. 오징어 순대를 맥주에 곁들여 점심으로 때우고 3시경 배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차를 마시다 피곤함이 몰려와 객실에 돌아와 쪽잠을 잔 후, Evening Chic 행사가 열리는 상가층으로 내려 갔다. 우리는, 듣기로, 이 행사는 Standing bar 에서 분위기 있게 칵데일과 다과를 즐기며 서로 어울리며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알고 정장까지 갖추고 내려 갔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꼬까옷 입고 장바닥에 나서는 꼴이었다. 춤이나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만 본전을 뽑는 것 같고, 속내는 선내 상가의 마케팅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한복에 머릿댕기를 드리운 손녀만 귀엽고 사랑스러워,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부러움과 사랑을 받아 '손녀바보' 할아버지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 !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맘 둘곳을 찾지 못하고 14층 Ocean View 갑판에서 밤바다를 즐기며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중에 아들, 며느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끊임없는 손녀의 재롱속에 아이들과의 대화는 흐뭇하고 즐겁다.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집사람의 원만한 가족꾸림에 고마움을 느꼈다.
10시쯤 아이들 방에 들러 며느리 생일을 축하 해주고 방에 돌아와 단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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