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 여행기/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기

3. 이르쿠츠크

반달이네 집 2018. 6. 5. 08:01





3. 이르쿠츠크




  

2015. 8. 9.()


     2시, 4시에 두번 깨었다침실을 나서면 항상 한 둘의 동료들이 복도에 서성거리며 어두운 밖을 응시하고 있다   현지시간 630 분에 이르크츠크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현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여자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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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르쿠츠크 시>

     이르쿠츠크는 , 이르쿠츠크 주도이다. 인구는 약 60만 명이다.    모스크바와는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어 있고, 앙가라강과 바이칼호를 잇는 정기선이 있어  러시아 극동지역과 우랄지역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동부 시베리아 교통 요충지이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는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좌가 놓여 있고 극장, 오페라 등의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

     1652 년 코자크 부대가 앙카라 강의 하류에 세운 야영지가 도시의 시초였다.  1686 년 도시로 승격될 때까지만 해도 작은 규모의 마을이었으나  17세기 말부터  중국과 몽골로 통하는 무역으로 인해 급격히 발달하였다.     제정시대에는 중앙정부로 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이 유배를 간 곳이지만 이들 덕분에 도시가 크게 발전 할 수 있었다.



Flag of Irkutsk (Irkutsk oblast).svg  


시기 와  휘장

  담비를 물고 있는 호랑이를 닮은 상상의 동물 은 시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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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큰 도시가  펼쳐져 있다.   아파트도 상가도 중앙대로도 있는,   시내를 휘도는 강이름은 앙카라 강이라고 한다.   강폭이 넓으며 물흐름이 빠르다.  넓은 곳은 거의 한강 수준이다.     앙카라 강과 공원들이 아름답다.  이제야 러시아가 유럽국가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여기서도 우리 관광버스는 한국버스 기아차 ♬  


물살이 급한 앙카라 강

앙카라 강의 유속이 상당히 빨랐다. 그 넓은 강이 마치 여울물처럽 급하게 흘러 인상적이다.

  바이칼 호에서 흘러 나오는 단하나의 강이며   흘러 에니세이강과  합류 해로 흘러 든다..



□   알렉산드로 3세 동상 :

      앙카라 강변에 세워져 있다. ,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아버지이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추진한 황제이다.    뻬떼르르크. 이르크츠, 불라디 보스톡에  동상이 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 3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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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알렉산드르 3 세 >

     부분적인 자유화를 용인하였던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테러로 암살 당하고 즉위한 그는 민중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으로 전제 군주를 강화하였다.   또한 후계자인 아들 니콜라이 2세에게도 자신의 사상을 주입시켜,  계속된  전제정치는 공산당혁명의 참극을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의 자본을 끌어들여 시베리아 철도를 놓기 시작하였다.   그도 알렉산드로 2세처럼 암살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     그의 아들 니콜라이 2세도 아버지 마찬가지로 전제정치를 계속하다 러시아 혁명으로 폐위되면서 1918 년 7월 17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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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진스키 성당 (러시아 정교) :  

      마침 미사중이라서  입장하지는 못했다.   러시아 정교는  미사를 섯 드린다고 하며, 십자가도 서방교회와 다르다고 (?)


 

카진스키 성당 , 러시아 정교 교회



    키로프 광장  

     스탈린 시대의 정치가 '세르게이 키로프' 이름을 딴 광장 .  

 주위에는  주정부 청사,  스파스까야 짜르꼬 교회 (구세주 교회), 영원한 불꽃, 

 노병의 다리,    카톨릭 교회 등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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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세르게이 키로프: 위키백과>

       세르게이 키로프는 소련의  정치가이자 공산당 지도자로 1934년 암살되었다.    그의 죽음은 스탈린 대숙청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탈린에 의해 레닌그라드 서기장으로 임명되었던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점차 독립성을 확대하여 스탈린과 맞먹을 정도의 권력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34년  레닌그라드 공산당 본부에서 스탈린의 정적 트로츠키를 따르던 학생에게 암살당했다.    이를 빌미로  스탈린은 대숙청 을 전개 한다.   후대  학자들은  스탈린이  경쟁자를 제거하면서, 또,  대숙청 구실을 만들기 위해 만든 일석이조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시아에는 현재 그의 이름을 딴, 키로프그라드,키로프 주, 키로프스키 등의 도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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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정부 청사 :   

     원래 큰 성당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 당시  파괴 되어 그 위에  주정부 청사를 세우고 ,  옆에 작은 첨탑형 예배당은 나중에 복구해 놓았다고. 한다



주 청사 정면 원경


첨탑 예배당


주청사 후면 원경



 스파스까야 짜르꼬 교회 구세주 교회


     이르크츠크의 두번째 석조 건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종탑의 종까지 녹아 내리는 이르쿠츠크   대화재 시 살아 남은 몇 안되는 건물중의 하나라고 한다.  , 벽화가 유명하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스파스까야 짜르꼬 교회


□   Peter and Fevronia  성인의 동상 :  구세주의 교회 앞 공원내




여기도 치릴로 형제 동상 ?  아니란다   Peter & Fevronia  성인의 동상.


동상 뒤의 토끼, 만지면  가정의 사랑과 행복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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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Saints Peter and Fevronia

     Peter and Fevronia  축일은  러시아 제국 형성 초기인 9세기  키에프루스(Kievan Rus) 시절부터 지켜오는 러시아 정교의 축일이다.   Peter and Fevronia  성인은 결혼과 가족,  곧  사랑과 우애의 수호성인이다.  축일은 7 월 8 일


     13 세기   Peter 공은  Murom 공국 왕위 즉위 전 불치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약초에 정통한  Fevronia.라는 시골 처녀의 약초 처방으로 병을 낫는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신분 차이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가 왕위에  즉위하였을 때,  오만한 귀족들은 왕비가 평민 출신인 것을 수용할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하였다..    Peter 공은  왕위를 포기하고  그녀와 망명을 선택하였다.    후일   Murom 공국에 왕위 쟁탈전으로 소요가 발생하자 공국민들은  그를 다시 왕위에 옹립하고,  Fevronia 는 공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교회와 수도원에서 그들이 같은 날 같이 죽게 해달라고 서원을 세우고,   죽으면 시신을 한 관에 함께 넣어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었다.    그러나,  왕과 왕비는  7 월 8 일 같은 날 죽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함께 한 관에 넣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신을 다른 곳에 놓아두면,   다음날  다시 합쳐 같이 있는 것이 발견 되었고,  두번이나 각기 다른 교회에  이송시켜 놓아도 두 번 다 다음날 나란히 함께 누워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  커플를   Murom 의 '예수탄생 대성당에 함께 매장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이들 두 성인들의 이야기는 방해 할 수 없는 사랑의 표상으로 정립되고, 러시아 정교회에서 그들의 사망일인 7 월 8 일을  이 두 성인의 축일로 준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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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톨릭 교회


레닌 훈령 기념비 사이로 보이는  카톨릭 교회



" 영원한 불꽃 '

      주 정부청사 뒷면  광장에 있으며,  2 차 대전중 희생된 5 만명의 시베리아  용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물.  석재 기단위,  별모양의  문양 가운데에서   불꽃이  타오른다.    우상측의  노병의 다리 입구의 청동 흉상은 대독 전쟁 영웅 '벨로 보르도바 장군의 흉상, 이다.,

      석재기단 둘레 잔듸에는 당시의  격전지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십여개의 돌판이 올려져 있는데, 그 곳에서 산화한 용사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고,  마주 보이는  청사 뒷벽면에는 훈장을 받은 70 명의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방학중에는 14~5 세 소년들을  영원한 불꽃 사방에 1명씩  교대로 24 시간 기립 경비를 세워,  청소년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청소년 교육에 고개가 숙여지며 부러웠다. 


 

 

" 영원한 불꽃 "

'

영원한 불꽃 둘레  잔듸 위에는  격전지 명을 기재한 석판을 배치하여  그곳에서  산화한 용사들을 상징하고 있다.

청사 뒷벽에는 전장에서  훈장을 받은 70 명의 이름이 크게 각인되어 있고.


     앙가라 강으로 통하는 노병의 다리 :  그 입구에  대독 전쟁 총사령관 '벨로 보르도바 장군의 흉상이 있다.



□  앙카라 강변 풍경



앙카라 강변에서


- 앙카라 강변의 이르쿠츠를  개발한 카자크 윈정대 대장 ( Yakovu Pohabove )  동상  




디카프리스트 박물관 (12월 혁명가) :  발콘스키 박물관


    이르쿠츠크에는 디카프리스트박물관이 2 곳 있다고 한다. 우리가 관람한 이 발콘스키 박물관과  트루베츠코이 박물관이다.   


 데카브리스트 [Dekabrist]  박물관 : 발콘스키 (부인 마리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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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고:  데카브리스트   Dekabrist >



            1825년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 혁명을 꾀한 혁명가들.  러시아제국 때인 1825년 12월에 일어난 혁명이기 때문에 12월혁명당원()이라고도 하며- 러시아어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한다.   12 월 혁명은,  대 나폴레옹 전쟁시 프랑스를 원정한 , 그곳에서 자유주의사상의 영향을 받은  귀족층  젊은 장교들이  주도하여 일어난 혁명사건이다.    

1821년 이후 이들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북방결사() 조직과 전면 공화제를 목표로 하는 남방결사, 그리고 전()슬라브의 연방제를 내세우는 통일슬라브 결사 등으로 분열되기도 하였으나, 혁명의 기운은 점점 높아갔다.   1825년 11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로 1세가  죽은 후 제위 계승문제로 혼란해진 틈을 타서 데카브리스트들은 무장봉기를 시도하였다 .

북방결사파가 이끄는 수개 연대는 12월 14일 상트페테스브르그 원로원 광장에서 거행된 러시아제국의 새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선서식장에서 선서를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혁명을 주도한 지도자인 세르게이 트르베츠코이 공작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반란은 와해되고 곧 진압되었다.    남방결사의 지도자 페스텔 등은 사전에 체포되었고, 그 해 말 통일슬라브파가 조직한 보다 혁명적인 반란도 실패하였다.  이 반란 사건으로 600여 명이 체포되어  5 명의 주모자가 교수형을 당하고 116명은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시베리아로 유배된 데카브리스트들은 수년에서 10년 이상 강제노역을 했으며 사면을 받아 강제노역에서 해방된 이들도 유배지에서 풀려나지 못했으며 바이칼호 서쪽에 있는 이르쿠츠크에 정착하여 살았다.

유배를 받은 귀족 중 기혼자인 18명의 부인들은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함께 이주하여 생활 했는데, 그중  발콘스키 부인마리아와, 트르베츠코이 공작의 부인 에카테리나 의 주거지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지냈던 집과 생활용품들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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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나멘스키 수도원


 

시배리아의 콜럼버스 모씨의 무덤이라던가 ?


 '데카브리스트' 리더  트르베츠코이  공작의 부인 에카테리나 그 자녀들의 묘


수녀원 앞   콜챠크 제독의 동상

니콜라이 2세 시 러시아의  흑해 함대의 마지막 함대 사령관,

소위 반동세력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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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 >  : 

      혁명시대  러시아 백군의 장군 .  끝까지 볼세비키 혁명군에 저항하다 이르쿠츠크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군인이며 정치가,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당시 흑해 함대 사령관이었다.    1917 년 적군 , 백군의 내전이 일어나자  백군의 사령관으로  끝까지 저항하다, 마침내,  이르쿠츠크 에서 적군에 체포되어 처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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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 관광 후 키루프 광장에 접한   앙카라 호텔에 투숙하였다.   위치도 건물도 훌륭한 호텔이었지만 그 운영은 난맥상을 보였다.    우리가  예약한 방을 먼저 온  단 손님에게 배정하여 ,  다른 방을 배정 받았는데 그중  2 층에  투숙한 사람들은  혹서에 에어컨도 없는 밤을 지냈어야 했다.     다른 층들은 고급 빌트인 에어콘이었었다.        호텔 체크인 후  중앙시장을 들러  눈요기를 했다.   소박한 시장 풍경이 정겨웠다.  식품 특히 고기 가격은 엄청 쌌다.     


     저녁은  ' 평양 식당' 이라는 북한식당에서 족발, 삼겹살 구이,  김치찌개백반으로 먹었다.   무대도 갖춘 넓은 홀에서 식사를 했다.      TV  화면에서는 북한 병사의  군가같은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으나, 우리가  남한 노래를  청하니  무대에서 가수가 불러 주었다.      사진 찍는 것을 저지하기도 했는데  살짝 찍었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쉰 후,  우리는  호텔앞 키로프 광장 잔디에서 맥주를 마시며 열기를 식혔다.   무더운 날씨에 하루 일정이 과다 했는지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중  깜박 졸기도 했다.






중앙 시장





평양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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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고 : 외부 자료 편집 >

러시아의 역사 개괄

 

<1917년 혁명 이전>

 

1. 9세기 이전의 러시아 역사

      4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러시아인의 선조인 동슬라브(East Slav)족이 지금의 러시아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6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드네프르 강 중상류 유역 주변에 몇 개의 종족동맹을 형성하였다8세기에는  노르만(Norman)계 바랴그 족이 등장하여, 바랴그족과 슬라브족간에 교류가 이루어졌다.   

 862년에는 노브고로드 류리크공국 이 출범되었다.   그리스의 선교사  키릴로스(치릴로)와 메토디우스가 그리스문자를 토대로 키릴문자 를 제정한 것은 이때이다.

 

2. 키예프 공국 러시아(9세기 후반~13세기 초)

      882년 올레그(Oleg) ()이 키예프를 수도로 지정하면서 시작되었다. 988년에는 블라디미르 대공(大公)이  비잔틴의 황녀 안나(Anna)와 혼인하면서 세례를 받고 동방정교를 국교로 제정하였다.

1019년에는 야로슬라프 현공(賢公) 치하 키예프 대공국의 황금기가 도래하여 슬라브족 최초의 법전 루스카야 프라브다가 편찬되었다. 1147년 편찬된 러시아원초연대기에는 모스크바 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다.

 

3. 몽고 타타르의 지배(1238~1480)

      1238년부터 1480년까지는 러시아가 몽골(Mongol) 타타르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였다1480년에는 이반 3세가 몽골에 대한 조공을 공식 거부하고 타타르의 러시아 지배를 종식시키고,  루시(Rus)라는 국명을 러시아(Russia)로 바꾸었다.

 

4. 모스크바 공국 시대(1480~1613)

     이반 4세(1533~1584) 중앙집권화를 완성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1547년  황제, 즉 차르로 등극하였다.    이반 4세가 죽고 난 후에  러시아는 혼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반 4세의 병약한 아들 표도르를 대신하여 이반 4세의 처남 보리스 고두노프가 섭정하던 중 표도르의 동생 드미트리가 사고로 사망했다. 그런데 1603년 폴란드의 지원을 받은 가짜 드미트리가 등장하여, 보리스 고두노프를 죽이고 13년간 모스크바를 통치하였다. 결국 쿠즈마 미닌과 드미트리 포자르스키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국민군이 폴란드를 물리치고, 미하일 로마노프가 황제로 추대되었다.

 

5. 로마노프 왕조(1613~1917)

     1613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는 로마노프 왕조의 시기이다.  표트르 1세(1696~1725), 즉 표트르  대제는 적극적인 서구화 개혁을 실시하였고,   1712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천도하였으며,   스웨덴과의 북방전쟁(Northern War)에서도 승리하였다1725년 표트르 대제가 죽고 난 후에   러시아는 한동안 여제 시대를 맞는다.

예카테리나 2(1762~1796)의 치하에서 터키,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으며그리고 적극적 개혁정책의 수행 및 법치주의 원칙을 선언하였.

     1812년에는 나폴레옹 전쟁(Napoleonic Wars)에서 승리하였으며, 1825년에는 젊은 귀족과 근위 장교를 중심으로 군주제와 농노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12월 혁명 -데카브리스트(Decabrist)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53년부터 1856년 사이,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과의 크림 전쟁(Crimean War)에서 패배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국제적으로 위신이 하락하고 내부적으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1855~1881)의 집권기인, 1861년에 농노제가 폐지되고, 지방·사법·교육·군에 걸쳐 자유주의적인 대개혁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미완인 상태에서 알렉산드르 2세는 혁명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10만 명의 시위대가 페테르부르크 궁정 앞에서 평화적으로 행진하던 중 군대의 발포로 희생당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였다.

     1914년에는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1917년에는 2월 혁명으로,  케렌스키 중심의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곧이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면서 로마노프 왕조는 몰락하였다.

    

 

< 소비에트 연방 시대 >  

1. 레닌 정권(1917~1924)

     1917년 10월에는 레닌의 볼셰비키당이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였다. 1918년에는 독일과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Brest-Litovsk Treaties)을 체결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서 이탈했으나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사이에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수도를 모스크바로 이전하였다.   1922에는 4년간 지속된 내전이 혁명세력인 적군의 승리로 끝나고 소비에트 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되었다.

 

2. 스탈린 정권(1924~1953)

    1924년 레닌 사망 후   트로츠키 와 스탈린 사이에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다. 1929년에는 트로츠키가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1934년 레닌그라드 당조직 제1서기 세르게이 미로노비치 키로프의 암살을 계기로 대숙청이 시작되었다.

1939년에는 독·소 불가침 조약(German Soviet Nonaggression Pact)이 체결되었으나, 1941년에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함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소비에트 연방은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

 

3. 흐루시쵸프 정권(1953~1964)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에 흐루쇼프가 공산당 제1서기로 취임하였다흐루시쵸프는 스탈린을 비판 하였고, 그 이후  정치범을  석방되는 등 해빙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956 년 헝가리에서 민중 봉기에 무력 개입으로 진압하였고, 1962년에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했다가 미국이 강경 대응함에 따라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4. 브레즈네프 정권(1964~1982)

     1964년 흐루시쵸프 가 해임되고  브레즈네프가 제1서기(1966서기장으로 변경)로 취임하였다.   이로써 해빙기가 종식되고 보수화가 시작되었다. 1968년에는 일명 프라하(Praha)의 봄으로 불리는 체코의 자유화 운동을  무력 개입하여 진압하였다.

 

5. 안드로포프 정권(1982~1984)

     1982년에 브레즈네프가 사망하자 68세의 안드로포프가 서기장에 취임하여, 브레즈네프 시기의 정체(政體)와 부패에 대해 개혁 의지를 보였으나 신병으로 인해 실행에 이르지 못하였다.

 

6. 체르넨코 정권(1984~1985)

     1984년에 안드로포프가 사망하자 72세의 체르넨코가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7. 고르바쵸프 정권(1985~1991)

     1985년 체르넨코가 사망하자 53세의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과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시작하였고.  이어 1989년에는 동유럽 국가들의 독립 선언이 잇달으며 소비에트 연방이 와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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