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수 필

소나무 가지치기

반달이네 집 2008. 10. 1. 15:06

                               소 나 무 가 지 치 기

 

                                                                               이      종     찬

   요즈음 나는 소나무의 가지치기에 흠뻑 빠져있다. 내 키 몇 배 높이 사다리로 올라, 제법 발붙임이 될 가지 밑동을 밟고 발돋움질 하거나, 실한 가지에는 아주 타고앉아 가지를 자르고 자근자근 순을 다듬고 한다.   마치 어릴 때 다 발산하지 못한 치기를 보상이라도 하듯, 높은 가지에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이 안스러운지, 다감한 주민들은 “위험해요! 조심하세요!”하며 조바심을 하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는 여간 신나는 것이 아니다.

 

   소나무는 햇빛을 아주 좋아 하는 나무다. 햇빛이 충분하지 못하면 쇠약해지고 종국에는 말라 죽기까지 한다. 한 나무의 가지들 사이에도 앞 다퉈 햇빛을 추구하다 보니, 가지들이 뒤틀리며 서로 엉킨다. 그렇게 햇빛 찾기 경쟁에서 이긴 가지들은 햇빛을 반사하며 아름다운 녹색 침엽을 뽐내게 되지만, 경쟁에 낙오한 가지들은 그 안에서 서서히 말라 죽고, 그 위로 썩은 낙엽들과 부셔진 잔가지들이 켜켜이 쌓여 부패하면서 옆의 건강한 가지까지 상하게 한다.

 

   이런 소나무를 생장여건이 나쁜 도심에서 조경수로 키우려면, 6월초 경에 새순치기(摘心)를 해 주어야 한다. 봄이 되면 가지 끝에 달린 작은 붉은색 눈들이 자라기 시작하여 6 월 초순경이면, 한 가지에 예닐곱 정도의 새순이 크게는 한자 크기로 자라는데, 이중 서너 순만 남기고 솎아 주고, 남긴 순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 주는 작업이 새순치기이다. 새로 증식하는 가지의 수와 크기를 조절하여 건강하고 균형 잡힌 수형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순치기를 철저히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관심이 없거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함부로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등의 좋은 위치에 처음에는 정성들여 심었던 많은 소나무들이 생기를 잃고 방치되어 있다.   이런 소나무들의 수세(樹勢)를 회복시키고 수형을 다듬기 위하여 가지치기를 한다.

 

   소나무의 가지치기할 때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소나무는 2 년생 이하의 가지에서만 가지치기 후 새순이 돋는 다는 것이다.   활엽수 가지 치듯 무심히 하다보면, 오래된 가지의 경우 기대한 새순과 잎이 돋지 않아, 아름답게 가지를 뻗기는커녕 그 가지 전체가 말라 죽어 낭패를 볼 수 있다.

 

가지치기 요령은 우선 죽은 가지를 자르고, 가지사이에 쌓인 낙엽과 잔가지들을 털어가며 줄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거슬리는 가지를 선별하여 잘라 가는 것이다.   거꾸로 선 가지, 수직으로 솟은 곁가지, 중심으로 파고드는 가지, 낙엽이나 잔가지 부스러기가 걸리는 가지 따위를 정리하여 가노라면,  타작마당의 검부러기를 뒤집어 쓴 꼴이던 수관(樹冠)이 훤해지며 가지와 잎 사이로 하늘이 보이게 된다.   이때 나무에서 내려와 먼발치로 전체의 모습과 옆 나무와의 조화를 가늠하며 큰 줄기를 점검하며 수형 잡기 작업을 마무리하면 된다.

 

   가지치기를 설명하다 보니 마치 내가 나무에 대해 경험 꽤나 많은 조경사로 비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조경에 관한 책을 읽으며 서툰 가위질을 하고 있는, 늦깎이 신참 관리소장이다.   첫 직장인 은행에서 30 년 근무를 마치고, 제 2 의 직업으로 선택한 일이다.     금년 봄부터 운 좋게 집에서 가까운 곳의 아담한 연립주택 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단지에는 조경수들이 제법 울창하게 심겨져 있다. 그 중 소나무들은, 둔덕이 높은 자리에 네다섯 그루씩 무리지어 여러 곳에 심겨져 있는데, 관리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른 나무에 비하여 바닥면이 고르지 않고, 수고(樹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지를 치면 배어나오는 송진들과 마른 침엽 조각들이 옷과 피부 속으로 파고드니 힘들어서 그냥 방치 해 왔을 것이다.

 

   소나무 가지치기에 내가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늦은 나이에 새로 터득한 일임에도 요령에 따라 작업을 해 나가면, 큰 어려움 없이 일련의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에 쏙 들어 오는 전정가위를 잡고, 한 가지 한 가지 점검하며 잘라내는 작업의 상큼함은, 30 년간의 책상머리 업무와  대인관계 업무에 시달려온 나에게 여간 짜릿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몰입하여 취하고 버릴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신나는 것이다.    게다가 끝마무리 결과까지 보기에 좋아서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하면,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경지가 아닐가 싶다.

그러나 내가 다듬어 낸 소나무들은 아직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자를 것만을 잘라낸 것은 틀림없는데, 그 꼴이 마치 머리털 숭숭 빠진 모습이라 안쓰럽고, 주민들이 핀잔이라도 주지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옛말대로, 법(法)은 알지만 묘(妙)를 살리지 못함일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시간 있을 때마다 좋은 조경수의 수형을 유심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멋있는 수형들을 눈에 익히기 위해서다.

 

   우리 집에서 분당 중앙공원까지 10 여 미터 폭의 보행전용 산책로가 오리정도 벋어 있는데, 양옆의 아파트 단지의 조경들과 산책로 자체 조경이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의 조경수들은 수형이 아름다워 나의 좋은 교과서 역할을 한다.    근무지가 가까워 여유로운 아침시간, 반달이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 매일의 학습 시간이다.

'소나무는 줄기가 저렇게 뻗치니 운치가 있구나.’

'중심에서는 줄기의 갈림수를 과감히 줄이고, 외곽에서 가지와 잎을 촘촘히 퍼지게 하면 수형이 좋아 보이겠다.’

'형이 잘 다듬어진 소나무들은 순도 짧고 야무지게 돋는 걸 !’

 

   소나무 가지를 치듯, 내 자신도 가지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인생의 후기에 들었으니 잘라낼 것도 많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중요하였지만, 이제는 존재의 의미마저 잃고 마음 한구석만 메우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릴 때의 부질없는 자부심들,   이제는 털어 내버리고 싶은 미움들, 욕심들  그리고 들추어내기에는 부끄러워 속에 감추고 괴로워했던 치부들....   이들을 골라 싹둑 잘라 버리면 나도 저들처럼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     다시 새로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