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녀 보 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어찌어찌 이끌었던 하루를 되새김하며, 안식을 찾는 귀가길이다. 현관 밖의 기척에도 자지러진 소리로 달려와 발랑 누워 보채는 반달이와, 하던 일을 놓지 않고 무심한 듯 반기는 아내, 그리고 익숙한 가구가 기다리고 있는 곳.
이런 나에게 두어 달 전부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왈왈대며 뛰쳐나오는 반달이 외에도, 그 저편에서 인형바구니를 뒤집어 놓고, 아주 그 바구니에 들어 앉아 흥얼거리며 딴 짓을 하고 있는 열여덟 달바기 손녀 아이, 그리고 어김없이 집사람이 서너 분의 이웃 아주머니들과 거실 앉아, 뜨개질 손을 놀리며 덕담과 웃음을 나누다 , 함께 ,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반기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싫지 않은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재빨리 반달이를 추슬러 앞세워 산보 길에 나서야 한다..
작년 10월 말부터 아내는 외손녀를 보게 되었다. 우리부부의 첫 손주다. 신참내기 공무원인 딸아이가 1 년여의 출산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게 되었었다. 사돈댁은 부산이다 보니 미룰 처지도 되지 못했고, 그 또래 아이를 낮 시간 동안 맡아 주는 어린이 집도 마땅한 곳이 없어서, 아내가 돌보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딸아이의 근무처가 원거리다 보니 손녀를 아침 6시 반경 시작해서 빨라야 오후 8시 반까지 돌보아야 한다. 그 나마 다행인 것은 딸아이가 공무원이라 1 년여의 출산 휴직 기간을 갖어, 그동안 충분한 보살핌과 수유가 있어서인지, 아이가 유순해서 보기가 수월했다. 석달바기 핏덩이를 맡아 키워주는 조부모도 많다지 않던가.
손녀아이를 보게 되면서 우리 부부의 하루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활달한 성격으로 이웃, 성당, 동창 등, 각종 모임이 많은 아내가 하루 종일 집안에 묶여 아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용하게 그 많은 모임들을 일주일 중 이틀에 모아 놓고, 그 이틀 동안 일손의 여유가 있는 조카를 도우미로 하여 아이를 맡기고, 주말을 제외한 나머지 3일에만 아이를 보며 감당하는 융통을 부렸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분주하게 헤집고 다니는 손녀아이를 하루 종일 봐주어야하는 아내는 자연히 집일에 소홀해져, 주방의 대소사들이 당연한 듯 내 몫이 되었음은 물론, 반달이의 새벽과 저녁 산책도 나 혼자 몫이 되었다,
게다가 겨울철이라 새벽과 저녁시간 바람이 차다보니 5 분 걸음의 거리이지만 아이가 감기 들세라 차를 태워 호송하는 역할까지 떠맡아, 아침저녁 출퇴근 전후의 분주한 시간에도 나는 충직한 병정개미처럼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이렇게 손녀 보기가 이제 3개월을 넘겼다 . 처음에는 아이를 보게 되면 갖게 될 번거로움을 털어 내려, ‘어떤 부모는 딸이 시집 못 보내 고민을 하던데, 시집가 손녀까지 안겨주었는데 이 무슨 행복한 투정이람' 하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하였지만, 정작, 그런 구차한 방편도 더이상 필요 없어졌다.
아내는 주말에도 아이가 눈에 아른 거린다며 이런 저런 핑계로 딸아이의 집을 찾아들고, 젊은 시절 극심스레 울고 보채는 조카에 학을 떼었던 나도, 손녀의 보드라움과 천진한 눈빛과 상큼한 미소,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놀고 있는 모습에 매료되어, 가슴 한편 짜릿한 행복감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속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지평이었다.
손녀를 보며, 나는 아이 보는 아내의 지혜와 사랑스러움을 재 발견 하게 되었다. 흔한 이야기로 우리 또래의 신세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임에서 농담같이 쏟아내는 아이 보기 기피 풍조를 무시하듯, 아내는, 손녀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며 마술사와 같이 아이에게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여운 행동을 유발시킨다. 아이를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며 말이다.
“지민아 ! 할아버지 오셨네, 배꼽인~사”, “예뿐~ 눈” 하면 아이는 영락없이 그 귀여운 행동을 따라하고, “지민아 응아하자” 하면 녀석은 눈과 손은 하던 일에 팔린 채, 자그마한 엉덩이를 앙증스럽게 프라스틱 변기에 조준하느라 흔들어 대곤 한다.
또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아내의 인사를 따라 손주 녀석도 뜻 모를 주절거림을 하고, 아내는 용케도 이를 통역하여 함께 박장대소를 하고는 한다..
유아가 한 단어를 완전히 익히는데 백육십 번인가의 반복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던가, 아내는 이런 따위 아동 심리학의 받침 없이도 손녀 아이에게 물건의 이름, 사회 공동체 참여에 필요한 행동 양식등을 가르치는 훌륭한 전 과목 선생이 되어 있었다.
여행과 모임을 좋아 하는 외향적인 아내가, 거의 하루 종일 집에 묶여 있게 되며 선택한 대안은 친한 이웃과 주부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아이를 보는 것이다. 그들 다감한 이웃들이 우리 집에 모여 함께 뜨개질도 하고, 정보도 나누며, 손주들이 인형이나 기타 잡동사니를 들척거리며 재롱을 피우는 것을 함께 얼르고 보호하며 덕담과 웃음 꽃을 피우고 서로의 협력과 우의를 다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돌봄과 사회성을 키워주는 일거 양득의 탁월한 선택인 것이다.
손녀를 보는 아내의 모습은 아름답다. 때론 몸이 고되다 투정은 하지만 손녀에 대해서는 항상 따듯한 눈길을 보낼 수 있는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다. 이런 모습이 꼭 아내만의 모습일까. 집사람과 함께 어울려 아이를 돌보며 즐거워하는 이웃 아직 젊은 할머니들도, 그 모습이 역시 아름답다.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엿보던, 바느질하며, 어린아이를 어르며, 까르르거리는 , 건강하고 따스한 동네 머리 큰 누님들의 모습을 그들의 모습에서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것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온 모성을 원형일 터.
오늘은 집에 들어가면 이웃집 아낙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내는 아이를 재워 놓고 내 저녁을 준비를 하고 있겠구나....
- 2010. 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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